"요즘 같은 시대에 시간이 나면 가족과 커피를 마시거나 브런치를 먹으러 가지, 사찰에 와서 참배하고 몇 시간씩 절을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면서 이제 절집 문화도 변하고 있습니다. 신도들에게도 '내 마음이 법당'이라는 생각으로 살면서 가끔 찾아와 힘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사찰에 오지 않아도 각자의 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자는 것이죠."
19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지난 17일 광주 무등산 증심사에서 만난 주지 중현스님은 코로나 시대 불교의 의미를 묻자 이 같은 답을 내놓았다. 증심사는 통일신라시대애 창건된 광주지역 대표 사찰이다. 평소 같으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신도들로 북적였을 사찰은 이날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한적했다. 코로나19 이후 법회, 불교대학, 소모임 등 대면 활동이 대부분 중단되면서 사찰을 찾는 신도들의 발길은 끊긴 지 오래다.
중현스님은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다양한 방법들이 생겨나듯, 절에 갈 수 없게 되자 요즘은 각자의 공간에서 부처님께 참배하고, 수행하는 다양한 방법이 생겨나고 있다"며 "지금의 불자들은 ‘절에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는 역사적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절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라고 말했다.
중현스님에게 코로나19는 '사람 없는 절은 무엇이고, 스님은 무슨 소용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불교의 역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스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마음이 어떨 때 절에 오시나요?'라는 질문을 올렸다. ‘힘들고 지칠 때 절에 가서 부처님을 뵈면 힘이 나고 마음의 위로를 얻습니다’ 라는 공통된 댓글이 달렸다.
스님은 "결론은 '불교는 사찰에도 없고, 스님에게도 없다'는 것, 즉 불교는 각자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지, 절에 사람이 오느냐 오지 않느냐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승복 입은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멀리 있는 이들이 스스로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사찰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혼자서는 힘들기 때문에 함께 모여 격려하고 수행하는 공간이 바로 사찰"이라며 “때로는 불상 앞에서 정성스럽게 예불하는 의식을 위해 법당, 불상이 있는 공간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신앙 생활도 개인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절이 일상의 중심이었다면 미래에는 내 마음 속 신행생활에 힘을 불어 넣어주는 상징적 공간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사찰은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스스로 선택해서 종교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불교가 처한 신도 고령화, 신도 및 출가자 수 감소 등의 문제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스님은 “각 사찰은 불교 신자가 신행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온라인 법회, 성지순례 같은 다양한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며 "오프라인 모임을 하더라도 과거처럼 몇 시간씩 절을 하는 게 아니라 가볍게 예불하고 차를 마시는 느슨한 형태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스님이 승복을 벗고 피자를 굽는 요리사가 되고, SNS와 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스님은 코로나19 이후 대면 법회를 찾는 이들이 줄자 온라인 법회를 개설하고, 불자들과 함께 '중현스님의 행복한 피자가게'를 열어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피자를 제공하고 있다. 사찰 방문이 어려운 신도들을 위해서는 사찰 소식지를 온라인으로 발행해 전송하고, 최근에는 법문을 묶은 책 '불교를 안다는 것 불교를 한다는 것'을 펴냈다.
스님은 "맛있는 피자만의 비밀 레시피가 있듯이 바뀌어가는 세상과 맞는 종교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대에 맞는 서비스를 고민하고 만들어 내면 신도들이 필요에 따라서 쓰는, 종교는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종교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청정과 수행이라는 큰 틀에서 요즘 사람들의 실존적 갈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니 부처님오신날에도 사찰에 신도들이 안 보인다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불교는 각자의 삶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이니 말이다. "절에 사람이 오지 않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절에 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건강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건강합니까?"
/글·사진(광주)=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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