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겔싱어(사진)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유럽 출장길에서 “인텔의 팹(생산 라인)을 유럽에 유치하려면 80억 유로(약 11조 원)를 보조금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금액은 인텔의 전체 유럽 투자 규모(200억 유로, 약 27조 원)의 40%에 해당한다. 지난 3월 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재진출을 선언하면서 유럽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인 인텔이 돈줄인 유럽의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톰스하드웨어 등에 따르면 겔싱어 CEO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과 독일 정부 관계자, 자동차 기업 관계자 등과 만나 “독일·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이 인텔의 파운드리 공장 후보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미국에서의 공격적 투자 계획을 밝힌 삼성전자와 TSMC가 유럽에 파운드리를 지을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인텔이 몸값 올리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11조 원에 이르는 보조금으로 이는 반도체 생산 라인 한 개를 건설하는 데 들어가는 투자 규모와 엇비슷하다. 겔싱어는 "우리는 칩 생산에서 대만과 한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은 아시아가 주도하는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텔은 위기에 처해 있다. 7나노(㎚, 10억 분의 1m) 이하 미세 공정 개발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TSMC와 삼성에 뒤지고 있다. 그 결과 주력인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도 AMD·애플 등의 거센 추격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최신 공정 칩을 만들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중심에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같은 고성능 칩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는 미래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려는 인텔의 의도가 감지된다. 겔싱어는 인텔에 30여 년간 몸담아온 대표적인 기술통이다. 재무전문가였던 밥 스완의 뒤를 이어 2월에 공식 취임했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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