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반발해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을 두고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려가 있을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이 실장은 2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중국이 한미 공조 강화를 경계하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 “중국은 지리적으로도 인접해 있고 무역·해외투자 면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협력 대상국”이라며 “한국은 중국과 호혜적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드 배치 갈등 때처럼 경제 보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본다”며 “그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너무 앞서나간 예측”이라고 일축했다.
이 실장은 또 이 부회장 사면론과 관련해 “경제계나 종교계, 외국인 투자 기업들로부터 그런 건의서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여러 가지, 그 국민적인 정서라든지 공감대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고려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별도 고려’의 의미에 대해서는 “사면 문제를 이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 전망을 가지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실장은 국내 대기업들의 44조 원 대미 투자 계획에 대해 제기되는 ‘밑지는 장사’라는 지적을 “우리 기업의 투자는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세계 시장을 지향해야 하는데 최고 기술이 있는 곳, 큰 시장이 있는 곳을 선점해야 된다는 전략”이라고 반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모더나 간 코로나19 백신 위탁 생산 계약에 대해서도 “위탁 생산이 단순한 병입 작업이라는 지적에 조금 놀랐다”며 “백신 원액을 들여와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의용 "대만 언급은 원론 수준" 일축...靑 "생산 허브 구축, 美와 입장 일치"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날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을 일축한 것은 중국의 양해를 최대한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중 무역 규모와 첨단 기술 협력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중국이 과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당시와 똑같은 태도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실장은 이날 중국과의 관계를 두고 “한국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기후변화 등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개방성, 다자주의 원칙, 특정 국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며 사드 배치 때와 같은 경제 보복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 실장은 야권에서 44조 원 규모 투자를 미국에 ‘조공’했다고 공세에 나선 것과 관련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K반도체 전략 투자 계획 규모(510조 원)가 미국에 대한 반도체 투자 규모(20조 원)를 크게 웃돈다는 점을 강조하며 “외국에 갖다 주고 한국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상호 보완적으로 산업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동 기자회견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일으켜 세운 다음 호명한 장면을 상기하면서 “미국에 투자 계획을 발표한 4개 큰 기업에 한 번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 순간 전 세계가 미국이 우리 기업의 미래 기술력을 인정하고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신 협력과 관련해서도 위탁 생산 계약 등의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시각을 반박했다. 이 실장은 한미 정상이 ‘포괄적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한 것에 대해 “한국을 백신 생산 허브로 만들자는 우리 구상과 미국의 입장이 일치한 결과”라며 “국내 생산 백신의 양을 늘리고 백신 관련 기술 수준을 높이면 중장기적으로 국내 방역 능력 향상이나 대외 협상력 강화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백신 공급처를 결정하는 권한 문제에 대해서도 “갈수록 단순한 위탁 생산을 넘어 라이선스나 직접투자 등의 분야에서 협력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권한이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 역시 한미정상회담 결과로 중국 측이 반발할 것이라는 우려에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3개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중국 (인권) 문제에 관해 국제사회에서 여러 논의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양안 관계를 언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장관은 “한중 간의 특수 관계에 비춰 우리 정부는 중국 내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계속 자제해왔다”며 “이런 우리 정부 입장이 공동성명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특히 한미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명시된 점을 두고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내용만 공동성명에 포함한 것”이라며 “우리 정부는 양안 관계의 특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 외교부가 전날 대만 해협 문제를 겨냥해 “불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 데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정 장관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중국 인권은 빠지고 북한 인권만 포함된 배경에 대해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직접적인 당사자이기 때문”이라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평가보다 북한 내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긍정적인 내용의 문안을 포함했다”고 강조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드 당시 수준은 아니더라도 중국이 어떻게든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보복이 없을 것이라는 정부 입장은 희망일 뿐 근거가 없다”며 “지금은 이미 사드 보복 상태라 더 이상의 경제 보복 카드가 없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입장을 바꾸기 위해 중국이 회유와 설득, 압박은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가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중국이 보복을 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중국에 자유무역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허세민 기자 semin@sedaily.com, 김혜린 기자 r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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