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중국에 데이터저장센터를 둔다고 발표했다고 26일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애플 같은 ‘선배' 미국 기업의 경로를 따라 중국 내에 데이터센터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데이터센터에는 회사 운영 과정에서 쌓이는 거래 내역, 고객 신상 등 많은 정보를 보관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데이터센터를 사업 대상 국가나 지역별로 저장, 관리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한 곳에 모아두는 게 낫다는 뜻이다. 특히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데이터센터를 현지에 둘 경우 검열 위험에도 노출된다.
하지만 테슬라도 손을 들었다. ‘만리방화벽’이라는 인터넷 장벽을 쌓은 중국 정부가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기업 정보를 모두 중국 내에 저장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해외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모두 자국에 두게 되면 중국 기업의 정보와 마찬가지로 해외 기업의 사업 내용을 감시, 검열할 수 있다. 미국 같으면 당장 기업들이 경영 활동의 자유를 외치겠지만 중국에서는 완전 딴판이다. ‘싫으면 나가라’는 중국의 엄포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실제 테슬라는 전일 오후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중국 현지에 데이터저장센터를 세웠으며 중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차량에서 생성되는 고객 정보 데이터는 이 센터에 저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테슬라는 “향후 중국 전역으로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테슬라의 이날 발표는 애플의 중국 내 데이터센터에 관한 우려와 오버랩되면서 주목 받고 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애플이 중국 현지에서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의 정보 관리 권한이 결국 중국 당국에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애플은 암호화된 고객 데이터를 풀 수 있는 디지털 키만큼은 미국에 두려고 했지만 중국 당국이 이를 거부해 결국 키를 넘겨줬다. 중국 내 애플 고객들의 모든 정보가 중국의 검열 대상이 된 것이다. 애플은 지난 2018년 데이터저장센터를 중국 내에 설치했다.
그나마 테슬라는 다소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테슬라가 중국 내 데이터저장센터를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온 것은 지난해 6월이다. 당시 중국 매체들은 테슬라가 데이터센터 관련 직원들을 뽑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센터 설치 추진 사실을 전했다.
그간 테슬라에 대한 중국의 압박 강도는 갈수록 세진 게 사실이다. ‘정보 보안’을 이유로 테슬라 차량의 정부 기관, 군부대 출입 및 주차 금지 소식을 흘리며 중국 정부가 압박하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CEO)는 “스파이 활동을 했다면 사업을 접겠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결국 테슬라도 중국에 굴복한 셈이 됐다. 이에 따라 테슬라 고객 데이터의 디지털 키도 중국 정부가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 정보에 대한 중국의 단속과 검열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2002년 구글 검색이 중국 내에서 차단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페이스북·트위터까지 해외 소셜미디어는 대부분 중국에서 금지된 상태다.
중국의 압박이 최대화된 것은 ‘데이터 주권’을 이유로 한 2017년 ‘사이버보안법(네트워크안보법)’ 제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중국에서 정보기술(IT)이나 금융 등 중대 정보를 관리하는 기업은 반드시 중국 내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중국 정부가 요구하면 이를 제공해야 한다. 또 중국 정부가 금지한 콘텐츠는 기업이 자체 검열을 통해 걸러내야 한다. 사실상 기업 정보를 중국 정부가 장악한 것이다.
이 법은 초기부터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옥죄는 법이라며 미국을 포함해 유럽·일본 등 민주주의 국가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미국이 발동한 무역전쟁의 주요한 이슈도 이 법이었다. 당시 미국의 압박에 중국은 법 완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현재는 유야무야된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이나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이런 굴욕을 당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국 시장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런 현상은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애플의 중국 매출 비중은 전체의 20%이며 테슬라는 더 많은 30%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업들이 사업을 핑계로 자사에 불합리한 규제와 제재를 가하는 중국 정부에 순치, 동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이제 중국에서 돈을 벌려면 인권 침해나 불공정한 관행 등에 침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공산당에 충성심도 보여야 한다는 점을 기업가들이 체득해가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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