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생법원이 개인 파산 신청자의 재산목록에 보유 중인 암호화폐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점차 급증하고 있는 만큼 파산과 면책 등 관련 절차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파산 및 면책 신청서’ 재산목록에 ‘가상자산’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회생법원의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을 화폐나 금융자산으로 볼지에 대한 논의는 아니다”라면서도 “집행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파산 신청서에 기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산·면책제도는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일부 빚을 탕감받은 뒤 가지고 있는 재산만으로 빚을 청산하는 제도다. 파산선고가 내려지면 법원은 파산관재인을 선임하고 관재인은 채무자의 재산·소득 등을 조사한 뒤 이를 처분한다.
하지만 가상자산의 경우 파산 신청서 재산 기입 목록에 포함되지 않아 조사 및 처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회생법원 등에 따르면 개인 파산 신청서에는 ‘현금’ ‘예금’ ‘보험’ ‘임차 보증금’ ‘대여금’ ‘매출금’ ‘퇴직금’ ‘부동산’ ‘자동차·오토바이’ ‘주식·특허권 등 기타 재산’ 등 총 14가지 항목만 기재하도록 돼 있다. 회생법원의 한 판사는 “암호화폐거래소를 통한 가상자산의 경우 충분히 파악이 가능한 만큼 이를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생법원은 지난 13일 개인회생위원 간담회를 열어 ‘가상자산 관리 및 조사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은행 입출금 내역으로 암호화폐거래소를 이용한 채무자들의 가상자산 규모를 조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법원의 이 같은 움직임은 가상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최근 급증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대형 거래소에서 활동 중인 투자자는 4월 말 기준 581만 명(중복 포함)으로 집계됐다. 전승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포트폴리오에 암호화폐를 포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법원도 이에 발맞춰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며 “가상자산에 대한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만큼 합리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개인 전자 지갑의 ‘비밀 키’까지 기입하도록 할 경우 파산절차를 악용하는 사례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이서영 마이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채무자가 고의로 허위 신청 서류를 제출하거나 진술할 경우 면책 불허가 사유에 해당한다”며 “전자 지갑에 은닉한 가상자산이 향후 발견될 시 이를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가상자산을 평가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격이 많이 변동되는 만큼 몰수 시점에 따라 평가액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다”며 “법원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일관되게 집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생법원은 내부 논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전국 법원 차원에서 추가 논의를 거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법원은 2018년 가상자산이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재산에 해당된다고 판결하면서 재산상 지위를 분명히 했다. 국세청도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체납자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을 수집·분석해 강제 징수에 나서고 있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구아모 기자 amo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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