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정부 수립 이후 70년 넘게 유지돼온 형사사법제도가 왜 이렇게 바뀌어야 했을까. 검찰은 왜 개혁 대상이 됐고, 이제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김오수 신임 검찰총장은 1일 취임사에서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후 맨 먼저 검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함께 특히 대한민국 검찰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고민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서 취임 당일 첫 일성으로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이다. 김 총장의 진단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제공한 가장 큰 원인이 검찰 내부에 있다고 봤다. 검찰의 그동안 업무 수행이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시대의 변화 요구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개혁이라는 심판대에 올려졌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김 총장이 앞으로 청와대와 거대 여당의 코드에 맞춰 검찰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수장으로서 그의 첫 일성에 검찰 내부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김 총장은 “검찰이 부정부패 척결 등을 통해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해왔으나 과도한 권한 행사, 조직 이기주의 불공정성 등 논란은 불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직 편의 위주에서 국민 중심으로 대이동해야 한다”며 부패·공직자·경제·선거·대형참사·방위사업 등 6대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는 필요 최소한으로 절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법무부가 추진 중인 검찰 조직개편안과 일맥상통한 내용이다.
김 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새 형사사법 제도의 조속한 안착은 물론 경찰에 대한 사법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도 재차 밝혔다. 또 사건 수사를 두고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수사 착수부터 종료에 이르기까지 수사 전 과정에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역시 앞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취임 이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박 장관은 사건 배당은 물론 수사 과정에까지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취지로 검찰 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검찰 수장으로 오른 김 총장이 취임 후 첫 일성으로 검찰의 반성과 자각에 따른 적극적 검찰 개혁 동참을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문제는 김 총장이 내세운 검찰 미래 청사진이 내부 의견과는 정반대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앞서 ‘6대 범죄 수사를 제한한다’는 내용의 검찰 직제개편안에 대해 전국 지방검찰청 및 대검 내부 부서의 의견을 취합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권력 부패를 향한 수사에 제한이 걸릴 수 있다’거나 ‘수사 동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우세했다고 전해졌다. 법무부가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조직 개편을 내걸고 나왔으나 실상 검찰 내부에서는 반대 기류가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박 장관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오수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고 합리적 범위 내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인권 보호와 사법 통제, 수사권 남용 억제라는 대의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정할 여지기 있다면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으나 검찰 내부에서는 ‘이미 답을 정해놓은 논의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직접 수사나 인사를 사이에 둔 중요한 논의를 앞두고 김 총장이 박 장관의 뜻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취임사에서부터 쏟아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취임 첫날부터 검찰 수장이 ‘청와대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거취는 물론 검찰 ‘빅4’ 구도를 맞추는 두 사람의 논의가 결국 친(親)정부 성향 검사들의 이른바 ‘영전의 장’이자 ‘방탄 정권’ 구도로 흐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법조계 안팎에서는 일선 검사들이 검찰 조직 개편에 반대하는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총장·검사 사이 극한 갈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김 총장이 실사구시 등을 강조하며 소통·자율·책임을 수사의 키워드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정권 코드 맞추기’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굳건한 방파제’로 지킬 대상이 정치적 중립·독립성을 추구해야 하는 검찰이 아닌 현 정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 인사와 조직 개편 결과를 봐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김 총장이 현 정부가 추구하는 검찰 개혁 방향에 동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일선에서는 직접 수사 제한 등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한 만큼 앞으로 방향성에 따라 검찰 내 혼란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재경지검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이제는 (김 총장이)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검찰 인사 단행 전에 대전지검과 수원지검 사건에 대한 수사 지휘를 검찰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 임기의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대전지검 형사5부의 경우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을, 또 수원지검 수사팀은 김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대전지검 형사5부는 앞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을 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대검에 보고했다. 수원지검 수사팀도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대검에 전달했으나 두 사건 모두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안현덕·이진석·손구민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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