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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로베르 쉬망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모국어를 빼앗기는 슬픔을 생생하게 그린 단편소설로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학교 괘종시계가 낮 12시를 알리고 프로이센 병사의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자 선생님이 말 없이 칠판에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라고 쓰며 끝맺는 장면은 진한 감동을 준다. 이 소설의 무대가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된 라인강 유역의 알자스 지역이다.

알자스와 로렌 지방은 프랑스와 독일의 영토로 수차례 바뀌었다. 10세기부터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다가 30년 전쟁 후 프랑스로,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후에는 독일로 넘어갔다. 1차 세계대전 후 다시 프랑스로, 1940년에는 나치 독일에 합병됐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로 복귀했다. 이 지역은 철광석·석탄 등이 많이 매장돼 두 나라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2차 대전 직후 로베르 쉬망(1886~1963) 프랑스 외무 장관이 프랑스·독일 등 5국이 참여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제안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ECSC는 자유무역 지대, 관세 동맹, 단일 시장, 통화 도입 등을 거쳐 현재의 EU로 발전했다. 분쟁의 진원지였던 알자스·로렌이 유럽 통합의 씨앗이 된 셈이다. 훗날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쉬망 전 장관은 로렌 출신의 아버지에 의해 독일인으로 태어나 알자스·로렌에서 공부했고 1차 대전 후 프랑스인으로 바뀌었다. 프랑스의 하원의원, 재정 장관, 두 번의 총리, 외무 장관 등을 지냈다. 어머니가 마차 사고로 죽으면서 종교적인 삶에 귀의해 평생 홀로 살았다.

EU 설립의 초석을 놓은 쉬망이 가톨릭 성인(聖人)에 오르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쉬망의 ‘영웅적 성덕’을 인정하는 내용의 시성성 교령을 승인하고 그에게 ‘가경자(可敬者)’ 칭호를 부여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유럽 평화의 기틀을 잡은 점에 대한 평가로 보인다. 한국·중국·일본 등의 동북아시아는 EU처럼 통합으로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이웃 국가로 지낼 수 없을까. 세 나라가 선린우호 관계를 형성하려면 모두 인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공통분모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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