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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보안법 칼날에…反中매체 빈과일보 결국 폐간(종합)

넥스트디지털 이사회 "26일 자정 이후로 접속 불가"

'지오다노' 창업자 지미 라이 창간…26년 역사 마감

지난해 8월 11일 홍콩의 한 열차 안에서 승객이 빈과일보를 읽고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홍콩 반중매체 빈과일보(?果日報)가 폐간을 공식 선언했다. 23일 홍콩 공영방송 RTHK에 따르면 빈과일보 모회사 넥스트디지털 이사회는 이날 짧은 성명을 통해 "현재 홍콩을 장악한 상황을 고려한 결과 늦어도 이번 토요일인 26일에는 마지막 신문을 발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온라인 버전에는 늦어도 26일 밤 11시59분 이후로 접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회사는 충성스러운 지지를 보낸 독자들과 26년간 헌신해준 기자, 스태프, 광고주에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앞서 홍콩 경찰 내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담당부서인 국가안전처는 지난 17일 빈과일보 사옥을 급습해 1,800만 홍콩달러(약 26억원) 규모의 자산을 압류하고, 라이언 로 편집국장 등을 체포해 기소했다. 경찰은 빈과일보에 실린 글 30여편이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고 밝혔다.

빈과일보는 사업가 지미 라이가 1995년 6월 20일 창간한 매체다. 중국 광둥(廣東)성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파산한 의류 공장을 인수한 후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Giordano)’를 창업해 아시아 굴지의 의류 기업으로 키운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9년 중국 정부의 톈안먼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에 충격을 받은 그는 1990년 넥스트 매거진,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하며 본격적으로 언론 사업에 뛰어들었다.

17일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인 빈과일보 사옥을 급습한 경찰이 압수물을 챙겨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빈과일보는 처음에는 파파라치와 선정적인 보도로 대표되는 영국 타블로이드지와 같은 길을 걸었다. 성적인 보도와 가십으로 도배돼 논란의 중심에 섰고, 특이한 방식으로 신문을 홍보하는 지미 라이에게는 '제정신이 아닌 미치광이 사업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그러나 빈과일보는 2002년 둥젠화(董建華)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 취임한 이후 정치문제에 집중된 보도를 내놓으며 중국과 홍콩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중국 지도부의 비리와 권력투쟁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해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 매체로 떠올랐다.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때는 종종 대중의 시위 참여를 촉구했고, 경찰 폭력 등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이와 함께 지미 라이도 2014년 '우산 혁명'과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에 직접 참여하며 홍콩 범민주진영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중국 관영매체와 홍콩 친중세력은 그를 외세와 결탁해 홍콩 정부를 전복하고 홍콩의 독립을 선동하는 인물이라고 몰아세웠다. 이어 지난해 6월30일 홍콩보안법이 발효된 후에는 그와 빈과일보가 홍콩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그는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8월 체포됐고 12월 기소됐다.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인 빈과일보의 라이언 로(오른쪽에서 두 번째) 편집장이 17일 자택에서 경찰에 체포돼 연행되고 있다. 홍콩보안법 담당 경찰은 이날 빈과일보 본사를 급습해 고위 간부 4명도 함께 체포했다. 이 회사 사주인 지미 라이 역시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AP연합뉴스


라이는 미국 대선과 관련한 스캔들에 연루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대선에서 라이의 자금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보고서 작성 프로젝트에 흘러간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당시 라이는 홍콩 등 이슈와 관련해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를 공개 선언한 상태였다. 그는 지난 4월과 5월에는 2019년 3개의 불법집회에 참여한 혐의로 총 징역 2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국은 그의 자산도 동결했다. 동결된 자산 규모는 5억 홍콩달러(약 727억원)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은 지난 17일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빈과일보 사옥을 급습해 압수수색을 펼치고 편집국장 등 5명을 체포하고 이중 2명을 기소했다. 또 회사 자산 1,800만 홍콩달러(약 26억 원)를 동결했다. 당국이 홍콩보안법으로 압박하고 자금줄까지 막아버리자 빈과일보는 결국 문을 닫게 됐다.

23일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인 빈과일보 본사 건물 앞에서 취재진이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때 하루 50만부를 발간했던 빈과일보의 최근 일일 판매부수는 약 8만부로 알려졌다. 빈과일보가 폐간하며 약 8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홍콩 명보는 전날 사설을 통해 "빈과일보가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폐간에 이르게 됐다"며 "당국이 자금줄을 끊으면서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미 라이가 정치적 도박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 결과 미디어 그룹 전체를 잃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독자들은 마지막까지 빈과일보를 구매하며 응원을 보냈다. 지난 21일 밤 9시30분 빈과일보 홈페이지에서 마지막 온라인TV 뉴스가 방송될 때 3만여명이 로그인 했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홍콩의 유일한 민주진영 신문이 문을 닫게 됐다"고 보도했다.

/박신원 인턴기자 shin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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