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부장검사의 90% 이상이 바뀐 검찰 중간 간부 인사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정권 보위 인사의 결정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청와대발 기획 사정 의혹 등 현 정권 관련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인 차·부장검사를 대거 교체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전면적인 전진(前進) 인사”로 검찰 개혁, 조직 안정에 주안점을 뒀다고 강조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기소 여부 판단 등 종착역을 앞둔 정권 수사가 좌초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이들 사건에 대한 김오수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다.
25일 공개된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 전체 고검 검사급(차장·부장검사) 686명 가운데 662명이 바뀌었다. 이달 초 단행된 검사장급 승진(10명)과 의원면직(3명) 등을 제외하면 중간 간부 대부분이 물갈이됐다. 특히 현 정권 수사를 지휘하는 부장검사는 100% 교체됐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의혹 사건을 수사한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의 경우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이동한다. 청와대발 기획 사정 의혹 사건을 지휘한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전보됐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택시 기사 폭행 사건을 수사한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과 이동언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장은 각각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 제주지검 형사1부장으로 옮긴다.
문제는 현 정권 관련 사건이 주요 피의자에 대한 기소 여부 판단만 남는 등 마무리 단계라는 점이다. 신임 차·부장검사 부임일이 내달 2일이라 사건을 결론짓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엿새뿐이다. 그나마 휴일을 제외하면 4일에 불과하다. 기한을 넘길 경우 수사 결론은 새로운 차·부장검사 등 수사 지휘 라인의 몫이다. 법조계 안팎에서 “정권 수사가 뭉개기, 시간 끌기 양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이 사건 수사 결론을 미룬다면 취임 당시 정치 중립성을 강조했던 김 총장도 ‘방탄 정권’ 또는 ‘친정권 인사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쉽지 않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 마무리를 신규 차·부장에게 맡긴다면 수사 기록 검토, 기소 여부 판단 등으로만 한 달가량이 걸릴 수 있다”며 “묵묵히 일해온 형사부 검사를 우대한다거나 인적 다양성을 꾀하기 위해 교체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번 인사는 누가 봐도 수사 방해를 위한 정권 보위가 목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수사가 1년여 진행되거나 결론이 임박한 상황에서 수사 지휘 라인을 교체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라며 “새로 온 차·부장이 수사 기록만 보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실제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수사의 경우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재판에 넘길지 여부의 판단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4월 24일 이 비서관을 소환 조사하고도 여전히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도 수사가 진행된 지 1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의 기소 여부를 정하지 못했다. 택시 기사 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전 차관을 재판에 넘길지 여부도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핀셋 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대대적인 교체 작업을 한 듯하다”며 “정권 말 보위를 위해 주요 보직에는 친정권 검사를 두고, 정권 수사를 하거나 반하는 검사는 변방으로 보내는 의도가 뚜렷한 인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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