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반의 MZ세대를 아직도 (30년 전) X세대가 받던 교육체계로 가르치고 있으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요. 4차 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시스템 대전환이 절실합니다.”
주영섭 고려대 석좌교수(전 중소기업청장)가 30일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토로한 말이다. 디지털 경제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대전환의 시기에 우수한 인재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수한 인재가 창의력과 혁신으로 새로운 형태의 기업을 창업하고 이를 통해 한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정반대다.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를 둘러싸고 글로벌 패권 경쟁이 한창이지만 국내 이과 인재들은 의학 계열로 몰리고 설상가상으로 중·고교 학생들의 수학 기초학력마저 악화돼 4차 산업 인력 양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기초학력을 증진시키고 유망주들을 이공계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강구해 첨단산업 전문 인재 풀을 늘리는 장기 플랜을 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대로 쏠리고 수포자는 사상 최대…줄어드는 4차 산업 인재 풀=대학 현장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이공계 관련 학과에서 인재들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다. 홍병우 중앙대 AI대학원 학과장은 “안정적인 직업을 중요시하다 보니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학 계열로 쏠리면서 이공계가 인재 부족을 호소해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4차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학에서 중고생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최근 공개한 지난해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 수학에서 기초학력에 미달한 중3·고2 학생의 비율은 각각 13.4%, 13.5%에 달했다. 지난 2017년 표본조사로 평가 방식이 변경된 후 사상 최고치다. 기초학력 미달은 2010년대 중반부터 심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신현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수리력이 전제가 돼야 미래 산업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지난 몇 년간 학생들의 수학 기초학력 부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객관식 수능·취업 중심 환경, 양질의 인재 육성 한계=4차 산업 핵심 인재를 키우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로 객관식 수능 중심의 대입제도가 꼽힌다. 현 수능 체제가 4차 산업 시대에 맞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내는 데 적합한 시스템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중 객관식 입시를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일본·미국·터키 등 6개국에 불과하다. 그나마 일본·미국은 입시의 참고 자료로만 활용할 뿐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하나의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사고하는 논술 문제로 입시를 치른다. 주관식 시험으로 유명한 프랑스 대입 고사 바칼로레아의 올해 기술 계열 논술 주제는 ‘기술은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가’였다. 대입·취업에 중점을 두는 교육 환경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의 한 대학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과학고 출신의 학생이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학생들이 취업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 양질의 4차 산업 인재를 키우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단기 정책 위주, 중장기 프로젝트는 손도 못 대=교육계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교육 당국의 중장기 프로젝트가 잘 안 보인다는 점을 우려한다. 4차 산업 핵심 인재 육성을 위해 의대 쏠림, 기초학력 부족 등 중장기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사안이 많은데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학력 부족 문제부터 이공계 인재 발굴·지원까지 전 과정에 걸쳐 체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하지만 1년·3년·5년 단위의 한시 사업을 진행하는 게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교육 현장에서는 인재 양성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홍규 전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대표적 인재 양성 사업인 BK21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진행돼온 인재 정책이 드물고 정권에 따라 5년만 하면 끝나버리는 단기적이고 즉흥적인 정책이 많았다”며 “교육부 등 각 부처에서 인력 양성 정책을 내놓아도 단년도예산주의에 따라 올해 몇 십 억, 길어야 5년에 몇 백 억 식으로 예산이 집행되다 보니 중장기적 시각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인재 양성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는 목표인 만큼 긴 호흡으로 체계적인 중장기 대책을 세워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 본부장은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가 좋아 초중고 학생의 기초학력을 일정 수준 끌어올려주면 미래 4차 산업 인재군을 더 많이 확대할 수 있다”며 “초중고의 기초학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직시해 평가 확대 등을 통한 학습 결손 대책과 미래 4차 산업 영재들을 발굴해 집중 교육하는 장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일선 학교가 학생 교육에 있어 창의성과 다양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대폭 보장해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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