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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윤석열·최재형에 秋까지, '대권 사관학교' 된 文정부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최재형 돌연 사퇴, 윤석열 "국민 약탈" 출정식에

靑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 예의 아니다" 견제

NY·丁에 추미애도 與경선 도전...초유 대선구도

前행정부 출신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유일

임명직들, 시대정신보다는 文 찬반으로 갈라져

野 유력 후보 육성 부진도 한몫...남은 변수 많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사의 표명,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선 출정식,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등 최근 대형 정치 이벤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차기 대권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특히 여권은 물론 야권 유력주자들까지 현 정부 임명직 공무원 출신으로 상당수 채워지면서 초유의 대선판이 펼쳐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국무총리 출신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경쟁군을 형성하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윤 전 총장, 최 전 원장이 부각하는 가운데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3지대의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느 대선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라는 평가다. 여권 인사들은 대체로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20년 이상 정치를 해 오며 문재인 대통령 철학에 철저히 동조하는 기성 정치인들로 구성됐다. 반면 야권 인사들은 문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며 인지도와 지지도를 급격히 쌓은 정통 공무원 출신 정치 새내기로 꾸려졌다. 대권 구도가 특정한 시대 정신보다는 문 대통령에 대한 찬반을 기준으로 형성되면서 행정부 자체가 사실상 ‘여야 대선주자 사관학교’가 돼 버린 셈이다. 현 정부 들어 일반 국민들의 정치 성향까지 극과 극으로 나뉘면서 국무위원들의 전례 없는 대권 도전 행렬도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8개월 뒤 대권을 거머쥘 인물이 문재인 행정부 인사가 될 지, 또 다른 인물이 될 지 여부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최재형 돌연 사퇴…文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 비판

최근 대선 정국에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이들 가운데는 문재인 정부 총리·부총리·장관급 출신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말 여러 ‘대권 잠룡’들이 침묵을 깨면서 여야 대선 구도 윤곽도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포문은 최 전 원장이 열었다. 최 전 원장은 지난 28일 오전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구두로 사의를 표명했다. 최 원장은 이날 감사원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며 “저의 거취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헌법에 규정된 감사원장의 임기는 4년이다. 2017년 12월 임명된 최 전 원장은 임기를 6개월가량 남겨놓고 사퇴했다. 표면적으로 최 전 원장의 사퇴는 월성 원전 감사를 둘러싼 여권과의 갈등이다. 다만 시점을 고려할 때 그의 사퇴는 정치 참여까지 다분히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나왔다.

최 전 원장은 윤 전 총장보다 더 보수 쪽에 가까운 성향인 것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그가 정치를 하게 된다면 국민의힘에 곧바로 입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최 전 원장 사의도 이례적이었지만, 이에 대해 보인 문 대통령의 발언도 이례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같은 날 최 전 원장의 사표를 바로 수리하면서 작심 비판을 쏟았다. 문 대통령은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최 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반응은 지난 3월4일 윤 전 총장 사의 때와도 다른 것이었다. 정만호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당시 윤 전 총장이 사표를 낸지 1시간15분만에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는 짧은 입장문만 발표했다. 윤 전 총장 사표는 다음날인 3월5일 수리됐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감사원장이 임기 중에 스스로 중도 사퇴를 한 것은 문민정부 이후에 전대미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1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퇴해 유감스럽다”며 “좋지 않은 선례로 남아 다음에 (감사원장으로) 오시는 분들도 자리를 활용해 뭔가 도모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같은 날 CBS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을 통해 “정치를 하겠다는 취지로 감사원장 본인이 스스로 보장된 임기를 그만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에 대통령께서 우려하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감사원장 사퇴 등 거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文정권, 국민 약탈”…靑 “예의 아니다”

최 전 원장은 사퇴 직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순식간에 야권 상위 후보가 됐다. ‘설마 감사원장직을 그만 둘까’라며 반신반의했던 잠재적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대안 후보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효과였다.

문 대통령 스스로 임명한 인사를 앞세워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29일 윤 전 총장 출마 선언으로 정점에 달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양재동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며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해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한다. 우리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며 “더 이상 이들의 기만과 거짓 선동에 속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전 총장과 윤봉길의사는 같은 파평 윤씨다. 또 윤 전 총장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은 충남 공주, 윤봉길의사의 고향은 충남 예산으로 같은 충청 지역이다. 6월29일은 1987년 제5공화국의 차기 대통령 후보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한 날이자 제2연평해전 19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이 나름 날짜와 장소에 의미를 부여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는 윤 전 총장의 강도 높은 비판에 일단 침묵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의 관련 언급은 특별히 없었다”고 전했다. 이날은 문 대통령이 박병석 국회의장·김명수 대법원장·유남석 헌법재판소장·김부겸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장 4명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가진 날이었다. 박 의장은 이 자리에서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 국회나 행정부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기관장들의 처신 문제가 우리 공직 사회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기관장들의 처신 문제’는 윤 전 총장이나 최 전 원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청와대의 첫 반응은 1일 박수현 수석의 입을 통해 나왔다. 박 수석은 1일 CBS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에 출연해 “윤 전 총장의 선언문을 보면 문재인 정부를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비판했다”고 반발했다. 이어 “본인의 한정된 시각으로 본 편향된 비판일 수 있다”며 “오랫동안 목말라왔던 국민들에 대한 첫 출마 선언으로서는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추미애(왼쪽부터) 전 법무부 장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 및 프레스데이 사전행사 '너 나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이낙연·정세균·秋에 김동연까지…文 찬반으로 대선구도 구축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직을 거친 뒤 대선 후보로 나선 인물은 윤 전 총장, 최 전 원장뿐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당에도 여럿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충심을 강조하며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적극적인 구애 전략을 펼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문재인 행정부 출신 여권 인사들의 이 같은 예외 없는 전략은 다른 민주당의 후보들과도 구별되는 지점이다.



지난 30일 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인물 9명 가운데 현 정부 요직 출신은 총 3명이었다.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던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총리를 비롯해 윤 전 총장과 각을 세웠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이름을 올렸다. 정 전 총리는 이달 9~11일 6명을 추리는 예비경선을 앞두고 이광재 민주당 의원과 단일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들 가운데 현재 지지율은 가장 높은 사람은 이 전 대표다. 하지만 상승세 만큼은 추 전 장관이 가장 눈에 띈다는 평가도 있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문 대통령 강성 지지자들의 표심이 이 전 대표, 정 전 총리가 아닌 추 전 장관을 중심으로 일부 결집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추 전 장관은 30일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고 촛불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며 “개혁 완수자의 입장에서 촛불의 명령에 미진한 부분을 점검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날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쥴리라는 인물을 들어봤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들어봤다”고 답하며 윤 전 총장을 다시 겨냥하기도 했다. ‘쥴리’는 일부 여권 지지자들이 윤 전 총장의 아내 김건희씨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추 전 장관은 또 “2,000만원밖에 없던 검사가 어떻게 60억원 이상의 막대한 재산을 공개하느냐”라며 “부인의 재산이라고 한다면 부인의 소득 출처에 대해 증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외에서는 김동연 전 부총리도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초기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의 근간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반대하며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갈등을 빚은 인물이다.

김 전 부총리는 여야 모두의 영입 대상으로 떠올랐지만, 민주당 경선에는 일단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가 제3지대 인물로서 독자 세력을 구축할지, 여야 중 어느 한쪽 세력과 손을 잡을지 여부도 이번 대선에서 초미의 관심사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前행정부 출신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유일…정치 양극화가 원인

직전 정부 임명직 출신 인사들이 여권은 물론 야권까지 아우르며 한꺼번에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직전 정부에서 민주적 절차로 임명직 국무위원을 맡은 뒤 차기 대통령이 된 사람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노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을 8개월 간 역임한 바 있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전 정권 행정부에 한 번도 몸 담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제5공화국에서 체육부·내무부 장관 등을 맡았지만 군부 독재 정부였던 전두환 정권 때의 일이었다. 민주화 이전 대통령 중에는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이 장관직을 거친 경험이 있었다.

더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수부 장관 경력을 대선판의 결정적 무기로 앞세우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인기는 ‘삼당합당’ ‘DJP 연합’ 등 지역주의 위주 정치 풍토, 독재 정권 때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누적된 권위주의에 대한 염증에서 비롯됐다. 노 전 대통령의 주된 경쟁력은 민주당 불모지였던 고향 부산에 수 차례 출마했다가 낙마한 용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으로 대변되는 지역 보스 정치와의 결별 기대 등에 있었다. 김대중 정부에서의 행정 경험은 큰 변수가 아니었다. ‘검찰개혁’ ‘코로나19 방역’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 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기필고 자기 성과로 안고 가려는 현 여권 주자들과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 내각 안에서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운 게 최대 업적인 야권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전 정부 관료 출신이 야권 대표 주자가 된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다. 김영삼 정부 최연소 노동부 장관 출신인 이인제 전 의원이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했다가 3위에 그친 15대 대선이 그나마 근접한 사례다. 다만 이 전 의원은 엄연히 여당 주자로 출발했다. 윤 전 총장 등과는 시작부터 명분이 조금 달랐다. 이 전 의원은 이후 자신이 이끌던 국민신당을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합치면서 반대 진영으로 건너갔다.

이회창 전 신한국당 총재 역시 김영삼 정부에서 감사원장·국무총리를 역임했음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처음부터 거리를 뒀다. 외환위기 여파로 김 전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대선 출정식부터 김 전 대통령 인형 화형식을 연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외곽에서 김 전 대통령과 다른 세력을 구축하거나 반대 당에 입당하지는 않았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나섰던 정동영 전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경력을 대선에서 상당히 강조한 경우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애초부터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대선이 전례 없는 구도로 치러지는 것은 일반 국민까지 문 대통령을 기준으로 극심하게 양분된 정치적 지형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권 지지자들은 문 대통령의 철학을 최대한 계승할 후보를 찾으려는 반면, 야권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심판할 적자를 밀어 주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심판할 사람을 찾다 보니 현 정부 내에서 그와 비슷한 실적을 낸 사람들만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아직도 야권 주자들에게 조목조목 비판을 내놓고 있다는 게 그 방증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이 아직도 스스로 유력 후보를 못 길러 낼 정도로 지리멸렬하다는 점도 현 상황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다.

다만 아직 대선까지 8개월이나 남은 만큼 변수는 많다. 각종 검증과 실책이 난무할 대선 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9년 만의 첫 국무위원 출신 대통령을 벌써 논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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