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참여를 위한 중국행과 관련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거기 앉아 있을 때도 대학살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대학살을 자행하는 중국 정부에 예의를 표한다면 전 세계 인권 문제에 대해 발언할 어떤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지난 5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내년 2월 개최될 예정인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놓고 국제사회의 보이콧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홍콩 사태와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바탕에는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서방과 중국 간 신경전의 성격이 깔려 있다. 미국 중심의 서구권과 옛소련을 위시한 동구권이 서로 올림픽을 보이콧했던 1980년대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라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신(新)냉전의 무대가 돼가는 모양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에 대한 전 세계의 여론이 나빠진 만큼 보이콧 물결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까지는 약 7개월이 남았지만 서구권을 중심으로 거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당장 유럽 의회는 8일(현지 시간) 홍콩 반중 매체 빈과일보 폐간과 홍콩 사회의 자유 침해에 대응해 관련자 제재와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 보이콧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중국 정부가 인권 상황이 개선됐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유럽 정부 대표와 외교관들이 올림픽 초청을 거절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발단은 2월 캐나다 의회의 동계올림픽 개최지 변경 동의안 통과였다. 동의안은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에 대처한다는 차원에서 만장일치로 처리됐다. 이미 당시 캐나다와 중국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2018년 말 미 사법 당국의 요청으로 캐나다가 중국 최대 통신 업체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의 딸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총대를 멨다. 펠로시 의장은 신장위구르족을 향한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대학살’로 표현하며 외교 보이콧을 촉구하고 있다. 선수들은 경기에서 뛰더라도 전 세계 지도자들은 불참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은 6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와 관련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동맹국들과 공동의 접근법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는 ‘2021년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중국을 인신매매 국가 중 최하위 등급인 3등급 국가로 지정하기도 했다. 지난달 영국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처음으로 대만 문제를 성명에 명기하는 등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동맹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상당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도 국제사회 일각에서 보이콧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시 국제 인권운동가들은 중국이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수단 정부가 다르푸르 지역 토착민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면서 20만 명 이상이 희생됐는데 수단 석유 산업에 투자하던 중국이 수단 정부에 무기를 대줬기 때문이다. 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중국이 다르푸르 사태 해결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 예술고문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사회가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의 명분으로 인권 문제를 내세우는 데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녹아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평화의 축제’라는 올림픽은 냉전시대 ‘동서 체제 경쟁의 무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옛소련은 40여 년간 패권을 놓고 다퉜다. 1979년에는 옛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 등 서방 60여 개국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거부했다. 이에 소련은 동구권 국가들과 함께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집단 불참하며 맞불을 놓았다. 특히 중국이 코로나19 진원지라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받는 상황에서 인권 문제 등으로 반중(反中) 정서가 전 세계적으로 짙어져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향한 국제사회의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국 여론조사 업체 퓨리서치가 1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올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스·싱가포르를 제외한 15개 국가에서 중국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이 50% 이상 나왔다. 일본이 88%로 가장 높았으며 스웨덴(80%), 호주(78%), 한국(77%), 미국(76%), 독일(71%), 영국(63%), 이탈리아(60%) 등이 뒤를 이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올림픽 후원사들에도 거부하라는 요구가 잇따르는 등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가까워질수록 보이콧 바람이 거세질 것”이라며 “중국이 오히려 ‘학살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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