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은 내륙이지만 물의 고장이다. 주천강·평창강·동강·서강·남한강이 관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강이 다섯이나 되니 강으로 합류하는 지류와 상류 계곡의 아름다움은 말할 필요가 없다.
처음 찾은 곳은 연하계곡이다. 연하폭포골이라고도 불리는 연하계곡에 이르니 대한민국 천하명당 십승지(十勝地)라고 새겨놓은 비석이 서 있다.
정감록에 근거한 십승지는 전쟁이나 난리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이상향으로 정감록 중 감결·징비록·유산록·운기귀책·삼한산림비기·남사고비결·도선비결·토정가장결 등에 기록돼 있다.
책마다 주장하는 위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 고서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소는 영월, 풍기, 합천 만수동, 부안 호암, 보은 증항, 남원 동점촌, 안동 화곡, 단양 영춘, 무주 무풍 등이다. 그중 첫 번째로 꼽히는 영월의 십승지가 바로 이곳 연하계곡 상류다. 산길로 차를 몰아 진입하니 과연 십승지로 꼽히는 곳답게 빽빽한 활엽수 터널이 이어졌다.
십승지라고 하지만 연하폭포골은 영월 읍내에서 멀지 않다. 계곡 입구 다리 옆에는 옛날 용이 살았다는 용소폭포가 있다. 높이 6m로 규모는 크지 않은 폭포지만 수량이 상당해 쏟아지는 물살이 박력 있다.
이곳에서부터 숲이 우거져 계곡으로 진입하는 순간 하늘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을 따라 1.5㎞에 이르는 계곡이 이어지는데 이 숲길 풍경 또한 일품이다.
용소폭포 상류에는 연하폭포가 있다. 연하폭포는 용소폭포에 비해 폭이 넓어 규모가 커 보이지만 도로에서는 바위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려면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전날부터 내린 비 때문에 바위가 미끄러웠다. 김원식 문화관광해설사는 “깊은 산골 같지만 이 좁은 계곡 위쪽에도 무려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며 “그중에는 도시에서 살다가 이곳 풍경에 반해 귀촌한 이들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사방이 트이면서 몇몇 가구가 모여 사는 연하계곡 치유명당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을 내려와서는 영월을 대표하는 유적지 장릉으로 향했다. 조선 단종은 첫 유배지였던 청령포에서 죽은 것으로 흔히 알려졌지만 청령포는 홍수가 잦아 단종은 영월 관아에 거주했다. 이후 이곳에서 사약을 받았으나 거부하다가 타살당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영월호장 엄흥도는 단종이 숨을 거둔 후 “상왕이 승하했다”고 저자에 알린 후 돌아와 시신을 지게에 지고 선영으로 옮겼는데 마침 그곳에 노루 떼가 모여 있다가 자리를 비켰다고 한다. 엄흥도는 노루가 있던 곳에서 잠깐 쉬었는데 지게가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아 그곳에 묘를 썼으니 거기가 바로 지금의 장릉 자리다.
장릉으로 오르는 언덕 오른쪽 낙촌비각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단종 승하 후 부임하는 군수마다 급사해 영월군수를 맡으려는 자가 없었는데 중종 36년에 박충원이라는 이가 자원해 부임했다. 부임 날, 사람들은 피신할 것을 권했으나 박충원은 의관을 정제하고 대청에서 앉아 밤을 맞았는데 꿈속에서 어린 임금을 여섯 신하가 모시고 있는 것을 봤다고 한다. 이튿날 일어나 꿈속에서 본 이가 단종이라 짐작하고 엄흥도의 후손을 앞세워 찾아가 보니 단종의 묘가 가시덤불에 덮여 있었다. 이를 단장하고 제사를 올리니 이후에는 부임하는 군수가 죽어 나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 같은 인연을 기려 박충원의 호 ‘낙촌’에서 따온 낙촌비각을 장릉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글·사진(영월)=우현석 객원기자
◇영월맛집-성호식당
영월에는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맛집이 한 곳 있는데 바로 장릉보리밥집이다. 이곳은 너무 유명해 이번에는 새로운 맛집 한 곳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방 여행을 하다 보면 대개 아침 식사 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 영월에서는 이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다슬기해장국 전문점 성호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다슬기해장국과 달리 들깻가루를 넣어 향긋하고 걸쭉한 국물에 담백한 맛이 배어나는 게 특징이다. 다슬기해장국·다슬기순두부 모두 값은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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