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올림픽에서 ‘역대급’ 메달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일본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쓰라린 대회로 기억될 것 같다. 세계 랭킹 5위의 여자 배구가 지난 2일 밤 도미니카공화국에 1 대 3으로 져 1승 4패로 8강 토너먼트 진출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여자 배구는 올림픽에서 금 2, 은 2, 동메달 2개를 따낸 일본 내 대표적인 인기 종목이다.
하루가 지난 3일에도 현지 언론과 팬들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야후 재팬은 “기대가 크지 않던 남자 배구가 29년 만에 8강에 나간 반면 메달이 기대됐던 여자는 25년 만에 8강에 실패했다”며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전문가 비판을 소개했다. 많이 읽은 인터넷 스포츠 기사의 상위권은 전부 여자 배구에 대한 질타나 몰락의 원인을 되짚는 기사들이다.
에이스 고가 사리나의 첫 경기 부상이라는 불운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분석은 ‘감독의 무능’을 꼬집고 있다. 전반적인 전술, 선수 교체, 데이터 활용 등에서 ‘미스’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마이니치신문은 “나카다 구미 감독은 2017년 취임하며 ‘전설에 남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요즘 배구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고 했고 산케이스포츠는 “‘동양의 마녀’ 그림자도 밟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동양의 마녀’는 1964 도쿄 올림픽 때 일본 여자 배구 대표팀의 별명이다. 신체적 열세를 조직력과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금메달을 따 충격을 줬다. 57년 만에 돌아온 안방 올림픽에서는 정반대의 충격이 일본을 덮었다.
나카다 감독은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동메달 멤버다. 현역 시절 ‘천재 세터’로 불렸지만 그간 쌓은 명성이 단 몇 경기로 날아가버렸다. 분노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마녀사냥에 가까울 만큼 섬뜩하다.
일본의 탈락은 한국에 진 게 컸다. 주장 아라키 에리카는 “(한국전 패배 뒤) 분위기 전환이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한일전 5세트 12 대 14의 벼랑에서 한국이 기적 같은 연속 4득점으로 이길 때 3점을 책임진 ‘영웅’은 공교롭게도 박정아였다. 5년 전 리우 올림픽 8강전 패배 뒤 ‘악플’ 세례에 시달렸던 바로 그 박정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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