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빅2’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간 공방이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한테는 져도 우리편에게는 질 수 없다’는 식의 ‘사생결단’ 싸움이 ‘이판사판’ 꼴볼견이 됐습니다. 최근 당 지도부가 나서 ‘원팀’협약식을 열었지만 당일 반나절도 안돼 서로 삿대질을 하더니 급기야 ‘조폭’과 ‘최성해’사진까지 올려두고 “무슨 관계냐”고 따져붙고 있습니다. 경선 승리후에 본선 승리를 장담해서일까요. 경선만 이기면 대통령 당선이 ‘떼어 놓은 당상’이다 판단하지 않고서는 이해가 어려운 싸움입니다.
경선만 통과하면 대통령 당선 유력…'이명박-박근혜'시절
당내 경선이 치열한 것은 당연합니다. 대표적인 경선이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이명박-박근혜 후보였습니다. 당이 반토막이 나는 내전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했지만 당시 정치상황은 둘 중 한명이 경선을 통과하면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니 그럴만도 했습니다. BBK와 도곡동 땅에 최순실까지 경선에서 물고 물며 싸웠지만 차례로 대통령에 당선될 만큼 집권 가능성이 높았고 그래서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두 대통령의 비리 역시 묻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압도적인 집권가능성이 당내 경선에 불을 당긴 셈입니다.
지금 민주당도 그럴까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업체가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7월4주차 전국지표조사(NBS)를 진행한 결과, 20대 대선에 대한 인식 조사는 '국정안정론' 39%, '정권심판론' 44%로 여전히 정권심판이 우위를 기록했습니다. 국정안정론은 5월4주차 45%, 6월4주차 41% 등으로 하락세를 기록 중인 반면 정권심판론은 5월4주차 43%, 6월4주차 47%로 상승세가 뚜렷했습니다.
국정안정론 39%vs정권심판론 44%…본선 이길 수 있나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모두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의 압도적인 국민지지를 아직도 믿고 있는 걸까요.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절반에 가까운 상황에서 유치한 감정싸움이 정권재창출에 가능성을 높일 거라고 믿는걸까요. 예비경선 당시 여배우 스캔들에 대응한다며 “바지를 내릴까요”라던 이 지사의 발언은 애교 수준이었습니다. 2021년 한국정치를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 ‘백제논쟁’은 발언의 진위여부를 떠나 그 자체가 논쟁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정치를 후퇴시켰습니다. 최근엔 ‘소칼·닭칼’ 이야기를 하더니 이 지사가 음주운전을 몇회했냐는 시비까지 붙었습니다. 여권에 아킬레스건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직격한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과 이 전대표가 찍은 사진에 맞대응하겠다며 이 지사와 광주 폭력조직 출신으로 알려진 5·18 구속자부상자회장 사진이 논란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말을 빌리자면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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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본질 ‘노무현’…‘친문’호소
사실 이 지사와 이 전대표 간 갈등의 기저에 깔린 정서는 ‘노무현’입니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가 16대 대통령 ‘노무현’을 뛰어넘지 못한 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셈입니다. 적통만 해도 속사정은 노 전 대통령과 누가 더 가까운지를 둔 논쟁이었습니다. 이 지사는 2017년 경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지독하게 공격해 권리 당원들 사이에 여전히 용납할 수 없다는 정서가 팽배한 형편입니다. 특히 과거 정동영 지지 모임의 공동 대표로 노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점도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를 적통으로 포장해 공격했고, 그러자 탄핵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전 대표는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바람에 노 전대통령과 각을 세운 시절이 있습니다. 당론으로 탄핵에 찬성한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의 주류인 ‘친문·친노’의 마음을 다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모두 친노 결핍 탓에 ‘적통·탄핵 찬반’을 내세워 상대의 부족함을 더 부각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백제 논란도 호남 차별보다 지역주의에 맞섰던 ‘노심’에 대한 구애가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9년 큰일 이후 ‘노무현 정신’은 사실상 ‘민주당 정신’이 됐습니다. 그 정신에 부합하려는 노력은 이해가 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닐까요. 노무현 정신의 핵심은 ‘특권·반칙’을 거부한 데 있지 ‘남 탓’이나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5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당대표를 지낸 이 전 대표와 1,300만 도백인 이 지사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노무현을 뛰어넘는 실력 경쟁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퇴행적인 논쟁이 아닌 진검승부를 할 때 결핍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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