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33년 무르익은 춤…파격 아닌 시대정신일 뿐"

■ 현대무용가 안은미 인터뷰

"춤은 운명이자 필연적인 내 삶

한 번도 쉰적 없는 치열한 사랑"

옷 벗고 머리밀고 과감한 몸짓

28일부터 창단 기념 4편 선봬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아트홀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 사진 촬영에서 자유분방하며 역동적인 동작을 펼쳐내고 있다./사진=오승현기자




순백의 천을 허리에 휘감은 반라의 여인이 무대로 천천히 걸어들어온다. 절제된 동작으로 바닥에 떨어진 검은 옷가지를 길어 올리는 자태는 태초의 모성을 떠올리게도 하고, 고대의 여신 비너스를 연상케도 한다. 훤히 드러낸 가슴을 보며 ‘외설적’이라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다. 몸짓으로 관객과 세상과 소통하는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무대는 뻔한 틀, 견고한 관습을 철저히 허물고 오롯이 몸이 전하는 메시지에 집중하게 한다. 안은미를 만난 것은 지난 19일 안은미 컴퍼니가 상주단체로 있는 서울 영등포문화재단의 공연장. 오는 28일부터 안은미컴퍼니 창단 33주년을 기념해 대표작 4편을 선보이는 ‘4괘-용 이름 거시기 조상님’을 앞두고 영상 촬영이 한창이었다. 조명과 음향, 카메라의 움직임을 일일이 점검하던 삭발의 여인은 ‘큐’ 소리가 떨어지자 무서운 속도로 무용수로 돌아가 몸에 집중하며 ‘또 다른 세계’로 빠져들었다.



“어릴 때부터 못 벗어날 운명이란 걸 느꼈어요.” 33년 ‘춤판’을 벌일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한치의 고민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누군가는 진부하다 말할 수도 있는 그 운명이란 것을 맞이하는 안은미의 자세는 그러나 순응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연적인 내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정말 열심히 할 거다. 그러니 너(운명)도 나한테 잘 해주라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죠. 나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장치이자 강렬한 믿음이었던 것 같아요.” 무용과의 사랑은 뜨겁고 치열했다. 1988년 안은미컴퍼니 창단 이후 33년간 발표한 작품만 150여 편. 이 엄청난 에너지는 인간 안은미가 자신의 운명에, 사랑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한해도 작품을 쉰 적 없다”는 그는 “어둠 속에서 줄을 타는 것 같은 외로운 작업이지만, 미치도록 사랑하면 할 수 있더라”며 웃어 보였다.

이번 ‘4괘’ 공연에서는 ‘드래곤즈’ ‘렛미 체인지 유어 네임!’ ‘거시기 모놀로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등 네 편의 대표작을 모아 선보인다. 아시아 5개 지역 Z세대 무용수 5인과 3D 작업을 통해 만든 최신작(드래곤즈)을 시작으로 각기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몸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무대(렛미 체인지…), 60~90대 여성 10여 명이 풀어내는 첫 경험의 이야기에 무용수의 몸짓을 더한 작품(거시기 모놀로그), 전국을 돌며 만난 할머니들의 춤을 기록하고 공연에 담아낸 화제작(조상님께…)까지. 세상의 금기, 관습, 고정관념을 보란 듯 깨부수는 안은미 표 예술 세계를 만날 기회다.





이름 석 자에 따라붙는 ‘파격’이란 수식어에 정작 당사자는 손사래 쳤다.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것들을 과감하게 다룰 뿐, 파격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옷을) 벗고 (머리를) 밀고 그래서가 아니라 주제를 선택하는 방식이 튀다 보니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안은미는 오히려 자신의 작업이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세계를 관통하는 맥, 핵심을 담아가는 것이길 바란다”며 “이 지점에서 나만의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늘 긴장한다”고 전했다.

지금껏 안은미가 펼쳐낸 작품엔 ‘나는 누구인가’에서 출발한 인간·사회·삶에 대한 고민이 녹아들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자유분방함은 오랜 시간 무르익은 ‘숙성된 사고’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무엇이기도 하다. “대학에 들어와서 ‘넌 누구냐’부터 시작해 수많은 질문과 마주했어요. 너무 많은 생각에 숨이 잘 안 쉬어질 정도였죠.” 여성학, 교육학을 배워가며 고민하고, 하나둘 답을 얻어갔다. 안은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빡빡머리’도 그 결과물(?)이다. “벗으면 이리 가벼운데, 다들 덕지덕지 무게를 얹고 사는구나 싶었죠. 우리 스스로 씌운 굴레와 껍질을 벗고 밀었더니 강박적인 것들이 사라지더군요.”



‘내 수준에 맞게 잘하자’는 일념으로 누벼온 춤판. 안은미는 “춤이든 생각이든 내 방식으로 무르익어야 한다”며 “나도 30년 지나니 이제 뭘 좀 알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서로 다른 자연이 흔들어대는 진동이 나는 늘 좋아요. 그래서 한순간도 멈출 수 없고요. 안은미 33년 발효 무대의 참맛은 이거 아닐까요.” 대표작 4편의 깊고 진한 맛은 이달 28·29일과 내달 4·5일 영등포아트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