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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아흐마드 샤 마수드





1979년 겨울, 구(舊)소련은 본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소련이 내세운 바르라크 카르말이 대통령직에 오르자 조국의 자유와 이슬람 신앙을 지키겠다며 선봉에 선 지도자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국민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다. 1953년 판지시르주 계곡에 자리한 자갈라크에서 태어난 마수드는 카불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고향인 판지시르를 근거지로 동지들을 규합해 무장 투쟁에 나섰다. ‘다섯 사자’를 의미하는 판지시르는 힌두쿠시산맥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도시로 계곡이 많아 천혜의 요새로 통했다. 당시 소련에서 카불로 이어지는 보급로가 인근에 있어 게릴라군이 공격하기 용이했다. 마수드를 눈엣가시로 여긴 소련은 1980~1985년 수차례에 걸쳐 대대적 공습을 했지만 마수드가 이끄는 게릴라군의 결사 항전에 9전 9패를 당했다.

친소 정권이 무너진 후 여러 부족 간 권력 다툼이 계속되던 중 1996년 세력을 키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했다. 마수드는 여러 부족을 모아 ‘북부동맹’을 결성해 탈레반 저항운동에 나섰다. 파슈툰족에 기반을 둔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앞세워 국민들을 통제했다. 특히 여성의 취업·교육 등 사회 활동을 엄격히 제약했다. 반면 타지크족 출신인 마수드는 여성 차별과 무고한 양민 상대의 테러에 강력 반대했다. 그러나 반(反)탈레반의 선봉에 섰던 그는 2001년 9·11테러 이틀 전인 9월 9일 알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피살됐다.



마수드 장군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 주니어가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은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의 배양실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우리는 여자아이들이 의사가 될 수 있는, 탈레반이 공개 처형장으로 사용했던 경기장에서 축구를 볼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싸우겠다”며 서방의 지원을 촉구했다. 비록 미군은 철수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염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자유와 인권을 위한 투쟁이 결실을 거둬 여자아이들도 의사가 될 수 있는 민주국가를 세울 수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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