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수백 명의 예멘인이 제주에 몰려들자 거세게 표출된 난민 반대 여론은 한국 사회가 ‘무슬림 난민’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3년이 흐른 지금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을 피해 한국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한국을 도와 희생하고 수고했던 이들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합리적인 수용 명분, 입국 아프간인들의 검증된 신원, 예멘 난민으로부터 얻은 학습 효과 등 여러 요소가 합쳐져 눈에 띄는 갈등 없이 입국이 이뤄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6일 외교부에 따르면 과거 한국 정부와 협력했던 아프간 조력자들과 그 가족 391명 가운데 378명이 이날 오후 입국했다. 나머지 인원도 다음 비행 편으로 입국할 예정이다. 이들은 도착 직후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6~8주간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격리된다. 이후 최대 5년까지 체류가 가능한 거주비자(F-2)로 일괄 전환될 예정이다.
아프간인 입국을 둘러싼 반대 목소리는 예멘 난민 입국에 극렬히 반대했던 3년 전 여론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양상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지난 24일 올라온 아프간 난민 수용 반대 국민청원은 26일 오후 2시 기준으로 2만 3,0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반면 지난 2018년 6월에 올라온 예멘 난민 수용 반대 청원은 등록 닷새 만에 2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총동의 인원은 71만 명에 달했다.
이 같은 차이가 빚어진 배경으로는 먼저 수용 명분이 뚜렷했다는 점이 꼽힌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2018년엔 제주도의 무사증 입국 제도를 이용해 예멘 난민들이 들어와서 반감이 컸던 반면 이번 입국은 정부가 ‘한국에 협력했던 이들의 안전을 위한 국가적 책무’라는 점을 강조했다”며 “이 부분에 대해 국민들도 공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탈레반은 서방에 협력한 아프간인들을 색출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 때문에 미국·영국·독일 등도 빠르게 현지 조력자를 구출했다.
입국하는 아프간인들의 신원이 상당 부분 검증됐다는 점도 주효했다. 정부에 따르면 이들은 아프간 현지로부터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4번 이상의 신원 조회를 거친다. 수년간 한국 공관 및 공공 기관에서 일했던 점에 비춰 봐도 탈레반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평가다. 입국 인원 중 10세 이하 아동의 비율도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진천군청이 진행한 주민 간담회에 참석했던 박윤진 진천군 덕산읍 이장단협의회장은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특히 젊은 어머니들의 마음이 동했다”고 전했다.
예멘 난민이 큰 문제없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 무슬림 난민의 수용도를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예멘 난민을 받아들이면 강력 범죄가 빗발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지만 예멘인들이 크게 문제를 일으킨 것이 없다”며 “이 때문에 우려가 조금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지난해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난민 수용에 찬성한다는 비중은 33%로 2018년 24%보다 9%포인트 늘었다.
하지만 장기 체류하는 아프간인이 많아지면 ‘제2의 예멘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의 인도적 체류자(난민에 해당하지 않지만 귀국 시 박해 위험이 커 체류 허가를 받는 이들)는 국적별로 시리아인(1,231명·52%), 예멘인(757명·31.9%), 미얀마인(37명·1.6%) 순이었다. 추후 장기 체류 비자를 받을 아프간인들의 규모가 국내 난민·인도적 체류자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희수 교수는 “어차피 한국은 중동과 멀어서 대규모 난민이 올 수도 없다”며 “난민들이 빨리 자립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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