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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9·11 20주년, 상처 깊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김영필의 3분 월스트리트]

그라운드 제로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과 취재진들이 철제 펜스 밖에 서있다. 멀리 옛 쌍둥이 빌딩 자리에 세워진 원월드 빌딩이 보인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지난 11일(현지 시간)은 9·11 테러가 일어난 지 꼭 2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여러 곳에서 관련 소식이 나왔지만 오늘은 특별히 제가 느낀 미국의 9·11 20주년을 전해드리려고 하는데요. 모든 것이 사람 사는 일입니다. 미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햇볕 따사로운 날…“미국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햇볕이 따사로운 날이었습니다. 기온은 23도 정도. 맨해튼 웨스트 스트리트 대로 옆 허드슨강변을 따라 나있는 산책로에는 간편한 차림으로 조깅과 자전거를 즐기는 뉴요커가 넘쳐났습니다.

느리게 걷는 앞 사람을 지나치기 위해서는 어깨를 반쯤 접어야 할 정도였지요. 피어34부터 피어26, 피어25, 옛 월드트레이드센터(WTC)가 보이는 배터리 파크시티 지역까지 다 그랬습니다. 가족이나 연인과 씨티 바이크를 타는 이들, 개를 데리고 즐겁게 산책하는 사람들, 모두가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20년 전 오늘도 꼭 같은 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전8시46분, 테러범에 의해 납치된 아메리칸 항공 보잉 여객기가 북쪽 타워에 충돌했지요. 이어 유나이티드 항공 비행기가 오전9시3분 남쪽 타워에 부딪혔습니다. 2,753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요. ‘America is under Attack(어메리카 이즈 언더 어택·미국이 공격받고 있다)’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11일(현지 시간) 그라운드제로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팔짱을 낀 채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UPI연합뉴스


이날 열린 추모 행사장인 그라운드제로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은 철제 펜스로 막고 경찰들이 지켰습니다. 이따금 지나갈 수 있느냐는 시민들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초청장이 없으면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두 블럭 정도를 지나 처치 스트리트 쪽으로 들어서니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한 수백 명의 미국인들이 멀리서 원월드 빌딩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기념을 하고 있었는데요. 지하철역인 세계무역센터역을 중심으로 지나가는 행인과 해외 취재진들이 겹쳐 제대로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한 여성은 “우리는 이날을 절대 잊을 수 없다. 20주년이어서 특별히 아이에게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는데요. 아이의 손에는 9·11의 참상을 다룬 책자가 들려있었습니다.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줄리 씨는 “20년 전 하루 종일 응급실에 있어 9·11을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됐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며 “하지만 지금 미국이 안전해졌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최근에는 인종차별도 극심해지면서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20년 전, 9·11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불러왔지만 현재 미군은 아프간에 없습니다. 당초 전쟁은 승리했지만 자유민주주의 이식 같은 아프간 사회변화는 실패했죠. 탈레반이 다시 집권하면서 이슬람국가(IS)의 테러 본거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20년 간 무엇이 남았는가, 그래서 미국은 더 안전해졌는가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깊이 아로새겨진 상처, “20년이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어제 같기도 해요”


유가족들의 상처는 더합니다. 여느 때처럼 20주년인 이날 행사에서도 희생자의 이름을 한명한명씩 가족들이 나와 불렀는데요.

저는 이것이 미국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나 그 누구의 연설도 없이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였습니다. 대통령도 하원 의장도 희생자의 이름만 묵묵히 듣는 나라, 전장인 아프가니스탄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투스타 장군이 있는 곳이 미국입니다. 많이 망가졌다고 하지만 미국의 힘은 중국이 쉽게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미망인은 9·11로 목숨을 잃은 남편을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는데요.

“조, 우리 아들은 당신을 많이 닮았아요. 매일 내 삶을 밝게 해주고 있답니다. 20년은 영원처럼 느껴지지만 바로 어제 같아요. 다시 만날 때까지 내 사랑 편히 쉬세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블라디미르, 우리는 당신이 너무 그립고 기도에 응답해줘서 고마워. 조카를 볼 때면 너의 얼굴이 보인다”, “네가 떠난 지 20년이 됐구나 어제 같아. 얼마나 슬픈 날인지” 같은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상을 떠난 자신의 가족의 이름을 부를 땐 울먹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9·11로 세상을 떠난 이들은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오빠, 동생, 삼촌이었습니다.

9·11 테러 하루 전인 10일(현지 시간) 밤 파란색 불빛이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사고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다 희생된 소방관 가족의 사진을 들고온 이도 있었습니다. 소방모를 쓰고 환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의 사진 밑엔 조지 케인이라는 이름이 써 있었는데요. “결코 잊지 않겠다”는 흐느낌이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오전 행사에만 8,5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전날 밤엔 9·11 희생자를 추모하는 두 개의 푸르색 불빛이 맨해튼 하늘 위로 쏘아올려졌습니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숙연케 하는 장면입니다.

첫 비행기가 북쪽 타워에 충돌한 시간인 오전8시46분께 주요 교회에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종이 울렸는데요. 미국이라는 국가의 방향을 바꿔놓은 9·11은 아직 미국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상처였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앞으로 나아가자(Let's move together)”


하지만 슬픔과 좌절이 전부는 아니였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그라운드제로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는 많은 뉴요커들의 화창한 토요일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인근의 구글 평점이 높은 식당에도 브런치를 즐기는 뉴요커들로 가득찼습니다. 전날 개막한 아트페어인 아모리쇼에도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몰렸고 이날도 명품거리인 5번가 608에서는 ‘뉴욕패션위크’가 열렸습니다. 패션위크 행사장에만 300~4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5번가에는 주말이어서 그런지 관광객과 인파가 넘쳤는데요. 패션위크가 열린 608 건물 대각선에 있는 성패트릭스 대성당에는 미국 국기가 내걸렸고 뉴욕소방이 9·11 관련 행사를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9·11을 기념하고 아파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20주년을 맞은 뉴욕 맨해튼의 모습이었습니다.

911 테러 하루 전인 10일(현지 시간) 뉴욕 자빗센터에서 개막한 아트페어 '아모리쇼'. /뉴욕=김영필 특파원


월가의 생각도 비슷했나 봅니다. 월가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아트 캐신 UBS 객장 담당 이사는 “우리가 잃은 친구들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볼 기회가 없던 사람들. 정말 침울했습니다”라고 했는데요.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캐신은 “당시 사람들은 일터로 돌아가 증권거래소를 재개장하는 것이 일종의 애국적 용기이지 힘으로 봤다”고 했습니다. 외부의 공격에 굴하거나 쓰러지지 않고 나는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죠. 미국적 가치와 생각이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시장과 증시에서도 이런 논리와 힘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놀라운데요.

그는 코로나19로 힘겨운 지금도 9·11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은 낙관적인 동물입니다. 특별히 당신이 미국인이라면요. 낙관주의는 이 나라의 정신입니다. 당신이 9·11 같은 끔찍한 일을 겪게 되더라도 당신은 좋아 앞으로 나가자라고 말 할 것입니다.”

미국도 정치분열과 인종차별, 빈부격차 확대로 시끄럽습니다. 해결할 일이 많지요. 바이든 대통령이 단합을 강조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낙관주의는 한국도, 한국 증시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매몰돼 있는 게 아닌 미래를 보는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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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당시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타워 오브 보이스. 지난 7월 말 찾은 이곳은 평일임에도 희생자를 기리는 관람객들이 꾸준히 몰렸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길을 한참 달려야한다. 추모객들의 숙연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김영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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