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인 1일 경북 포항 영일만 도구 해안에서는 전례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신 대형 수송함 ‘마라도함’을 타고 해병대 제1사단의 연합 상륙작전 연습을 참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행사를 통해 ‘안보 대통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진보 진영은 안보가 약하다’는 세간의 인식을 전환하려고 노력해왔다. 취임 후에는 국방 예산을 크게 늘려 지난 2020년에 사상 최초로 50조 원을 넘겼다. 9월 15일에는 대통령이 직접 국내에서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첫 시험 발사에 공개적으로 참관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막대한 국방비 지출이 이뤄지고 있지만 실질적 대비 태세는 약화되는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병역 기간은 18개월로 단축돼 가뜩이나 저출산으로 줄어드는 병역 자원 문제가 가중됐다. 한미 연합훈련 중에서 대규모 실기동 훈련은 대대급 이하로만 축소돼 실시되고 있고 ‘키리졸브’ 연습은 아예 폐지됐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개발은 한층 고도화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11~30일 약 3주 사이 ‘신형 반항공 미사일’을 비롯해 미사일 신기술 4종을 과시하듯 잇따라 시험 발사에 나섰다. 근래에는 북측의 일부 핵 시설 재가동·증설 움직임도 포착돼 수소폭탄 개발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유엔 연설에 이어 이달 1일에도 한국전쟁 당사국 간 ‘종전 선언’을 다시 제안했다.
현 정부가 대북 포용 일변도이기만 한 이유에 대해 한 고위 당국자는 “독일 통일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서독은 냉전 시절의 굴곡 속에서도 동독에 대한 대화와 포용의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 동독의 신뢰를 얻고 독일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과거 동·서독 통일 과정과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다르다. 당시는 냉전 해체기였고 현재는 신냉전 심화기다. 동독 정권은 권력을 세습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3대에 걸쳐 세습했다. 동독은 핵을 자체 개발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스스로 핵무장을 했다. 1980년대 옛 소련이 동독에 핵 탄도탄 SS-20을 배치하자 서독은 미국의 퍼싱-2 핵미사일을 배치한 반면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 미국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에 대해 부정적이다.
우리 정부가 이 같은 차이를 간과한 채 옛 서독식 포용 정책만을 고집한다면 북한에 신뢰를 얻기보다는 ‘만만한 상대’ ‘굴종적인 정권’으로 얕보일 수 있다. 진정한 안보는 상대방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맞설 의지를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런 용기와 태도가 바탕이 돼야 상대방에 대한 대화 제의도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안보를 챙기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는 높게 평가하지만 근본적인 대북 대응 자세를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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