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입주 절벽’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년 뒤 입주 바통을 넘겨받아야 할 핵심 분양 예정 단지들이 줄줄이 일정을 뒤로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입지 등을 감안할 때 분양만 하면 ‘완판’될 가능성이 100%에 가깝지만 정부의 각종 규제와 조합 내 갈등 등으로 강동구 둔촌주공 등 대규모 사업장들이 연내 분양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12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핵심 분양 예정 단지들이 분양 일정을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 서초구 신반포15차(래미안 원펜타스) 조합은 최근 대우건설이 제기한 ‘시공자 지위 확인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한 후 지난 8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미 새로운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공사를 상당 부분 진행한 상황이지만 대우건설이 법원에 공사 중지 가처분을 낼 예정이어서 전체 사업 일정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는 분양가 산정과 관련해 개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에 따른 일정 연기도 속출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진주(2,636가구)는 특별건축구역 지정에 따른 설계안 변경으로 한 차례 일정이 연기된 상황에서 “분양가상한제 개편안을 보고 일정을 다시 정하자”는 내부 의견이 나와 사실상 연내 분양이 물 건너갔다. ‘단군 이래 최대 정비 사업’이라는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에비뉴포레) 역시 분양가상한제 개편 일정이 앞당겨지지 않는 한 연내 분양은 사실상 어렵다는 분위기다.
강북권 대어급 단지인 동대문구 이문1구역(3,069가구) 또한 분양가 갈등 속에 일단 내년으로 분양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강남구 청담삼익(청담르엘)은 분양가 산정 논란에 더해 오염토 발견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조합 내부 또는 시공사와의 갈등도 ‘분양 가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초구 방배5구역(디에이치 방배)은 개발이익 비례율을 상향 조정하기로 하면서 조합원들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상태다. 방배6구역은 철거까지 마친 상태에서 시공사(DL이앤씨)와의 공사비 인상 갈등 끝에 지난달 시공사 계약을 해지함에 따라 사업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의 분양 절벽이 계속되면 공급 감소에 따른 집값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양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초 분양 물량으로 집계됐다가 사업이 지연돼 이듬해 분양 예정 물량으로 다시 이름을 올리는 일이 매해 반복되면서 공급량이 매년 일정량 이상 나타나는 듯한 착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기대로 청약 시장 대기자들은 계속 늘고 있지만 정작 공급은 거의 없어 아파트 가격 상승을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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