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에서 9타 차의 충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던 게 거의 10년 전의 일인데 김효주(26·롯데)의 골프는 지금도 ‘최신형’이다. 지난달 31일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우승으로 그 사실을 뚜렷이 확인했다. 넉넉한 리드가 박빙으로 바뀌자 김효주는 13번 홀(파4) 아이언 샷을 핀 30㎝에 붙이고 17번 홀(파3) 그린 밖 9m 버디 퍼트로 쐐기를 박아버렸다.
역대 서울경제 클래식에서 두 번의 준우승 끝에 마침내 첫 우승 단추를 끼운 것이다. 올 4월 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 우승부터는 6개월 새 3승을 몰아쳤다. 올겨울 몸 만들기와 퍼트 다듬기에 ‘올인’해 “미국 무대로 상승세를 옮겨가겠다”는 김효주를 18문 18답으로 만났다.
-우승의 원동력으로 꼽은 ‘즐기는 골프’가 화제가 되고 있어요.
- △10번 홀에서 터무니없는 미스가 나왔을 때도 순위 떨어지는 걸 걱정하기보다는 ‘이러다 6언더파 못 치겠는데?’ 싶었어요. 미리 정한 그날의 목표 스코어만 생각하고 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3년 6개월간 우승이 없다가 지난해부터 5승을 쏟아내고 있어요.
△힘든 시간이 길긴 했죠. 뭘 해도 안 됐으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으니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만 하면서 보낸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있긴 했어도 깊이 빠져들지는 않았는데 2019년에 준우승을 몇 번 하면서 자신감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성공하는 샷과 퍼트를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에 쌓았더니 지난해부터 우승이 나왔어요. 대회가 아니라 친구들과 연습 라운드 나온 거라는 기분으로 편하게 하다 보니 찬스가 왔을 때 성공률이 높아졌어요.
-골프 말고 요즘 ‘꽂힌’ 건 뭔가요.
△TV 골프 예능 프로그램 찾아보는 거랑 프로농구 중계 시청요.(김효주는 어릴 적부터 농구·축구를 좋아했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저 고민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시즌 끝나기 전에 우승 한 번 더 할지 살짝 고민이었는데 이렇게 하게 됐네요.
-‘올해 이건 꼭 지키고 있다’ 하는 게 있을까요.
△지난해까지는 아침을 챙겨 먹는 거였는데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히 습관이 됐고요. 올해는 딱히 막 지킨다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죠.
-올 시즌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이번에 우승하지 못 했으면 70점인데 해냈으니 80점 이상은 줘야죠. 하지만 시즌 전체로는 꾸준함이 조금 부족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못 주겠어요. 올림픽 메달권 실패는 많이 아쉽기는 해도 대표팀에 선발돼서 올림픽을 뛰었다는 자체에 자부심이 꽤 있어요. 골프에 있어서도 큰 경험이 됐고요.
-시즌 뒤에 하고 싶은 일은.
△물욕이 없는지 사고 싶은 건 없고 배워보고 싶은 건 있어요. 농구요. 선수처럼 스킬 트레이닝 센터 가서 본격적으로 해볼까 해요. 춤 배우는 것도 관심 있는데 스윙 리듬감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나를 가장 수다스럽게 만드는 친구는 누군가요.
△그 어떤 누구와 있어도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특히 지은희·이정민·이미향·김세영 언니랑 있으면 쉬지 않고 떠들어요.
-다가올 비시즌 키워드는.
△‘벌크 업’이요. 거기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요. 몸은 이제 그만 키우라는 얘기도 듣지만 그래도 강도 높게 운동해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19 때문에 시즌 중에 운동을 제대로 못 했더니 근육량이 줄었어요.(김효주는 엄청난 운동량과 식사량으로 체중과 근육량을 확 늘려 비거리 15m 증가 효과를 봤고 그 결과 지난 시즌 국내 투어 3관왕을 차지했다.)
-코로나가 사라진 뒤 1주일 휴가가 주어진다면.
△실내에서 운동을 많이 못 했으니까 마음 편하게 운동 가고 친구들이랑 노래방도 가야죠.
-은퇴 전에 꼭 남기고 싶은 기록이 있나요.
△5개 메이저 대회 전부 한 번 이상씩 우승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요. 명예의 전당은 너무 높이 있는 기록이에요.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엄청 어려운 기록이구나 실감해요.
-지금까지 이룬 성취 중 가장 뿌듯한 것은.
△KLPGA 투어에서 최소타수상을 두 번 한 거요.(2014·2020년)
-내게 도쿄 올림픽이란, 그리고 파리 올림픽이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는 꼭 리우에 가야 한다는 목표 의식을 갖고 쳤는데 안 돼서 많이 힘들었어요. 올해 도쿄는 일부러 생각을 안 하려고 했더니 스트레스도 덜 받고 출전권도 오더라고요. 올림픽은 젤리 같은 거라고 할까요.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신기한 것. 투어 대회 우승하고는 뭔가 좀 달라요. 파리요? 나가고 싶죠. 올해 한국 팀이 힘을 못 썼으니까 그때는 달라야죠.
-가장 닮고 싶은 스윙은.
△로리 매킬로이 스윙요. 키가 그리 큰 편이 아닌데도 파워풀하면서도 밸런스가 정말 좋아요. 궤도도 그렇고 제가 좋아하는 스윙의 완벽한 표본이에요.
-박민지 선수(국내 투어 시즌 6승)는 김효주 선수의 퍼트와 쇼트 게임 능력이 부럽다고 하던데.
△(박)민지랑 같은 조로 쳤을 때 유독 잘 됐어요. 그래서 저를 뽑아주지 않았나 싶네요. 예전에 민지를 보면서 샷이 흠잡을 데 없이 좋아서 퍼트가 조금만 따라와 주면 우승 정말 많이 하겠다 싶었는데 올해 제대로 보여주더라고요.
-지금까지 쳐본 코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제일 예쁜 곳은 프랑스 에비앙GC, 제일 좋아하는 곳은 미국 토리 파인스요. 토리 파인스는 아마추어 대회 때 스스로 골프 백을 끌고 다니면서 쳐봤어요. 바로 옆의 바다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에 깊게 박혀 있어요.
-골프 선수라서 가장 좋은 것 한 가지, 불편한 한 가지는.
△국내외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요. ‘은퇴 후 계획도 미리 생각해 놓으면 좋겠다’ ‘선수 생활 오래 하면서 후배들한테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같은 감사한 당부들을 자주 듣고 있어요. 잘만 치면 어린 나이에도 많은 상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좋죠. 안 좋은 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온다는 전제 하에서요.
-프로 첫 우승 이후 올해가 딱 10년, 정식 데뷔로 치면 내년이 10년이에요. 김효주에게 지난 10년은.
△순식간이었다? 벌써 10년이라는 게 정말 안 믿겨요. 딱히 한 게 없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는 느낌…. 후배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 말고는 다른 게 없어요. 장난기 많고 철들지 못 했고. 좋았던 시기도,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10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똑같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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