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국에 100여 곳의 ‘국민관광지’가 지정됐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자연경관이 빼어난 산과 강·계곡 등을 개발해 만들어진 국민관광지는 휴가철 여행객들이 찾던 대표 휴양지다. 강원도 원주시 간현관광지 역시 1985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원주시 지정면 소금산 아래 섬강과 삼산천이 합쳐지는 지점에 자리한 이곳은 한때 서울에서 중앙선 열차를 타고 몰려온 대학생들이 야영을 하며 며칠을 묵어가던 추억 속 여행지다. 중앙선 폐선으로 간현역은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 돼버렸고 간현관광지를 찾던 대학생들은 경춘선을 타고 강촌역으로 옮겨갔다.
쇠락하던 간현관광지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2018년 개통한 소금산 출렁다리다. 높이 100m의 암봉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이면서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주말이면 소금산 입구에는 다리를 건너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연간 8만 명 남짓이던 간현관광지 방문객 수는 출렁다리 개통 1년 만에 200만 명을 넘어서며 코로나19 이전까지 흥행 신화를 써 내려갔다.
국내 최장 출렁다리를 앞세워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던 간현관광지가 이제 또 한 번의 대대적인 변신을 앞두고 있다. 다음 달이면 출렁다리를 시작으로 요즘 최고 인기라는 잔도(棧道)와 전망대·울렁다리·케이블카·에스컬레이터까지 갖춘 대규모 레저단지 ‘소금산그랜드밸리’로 거듭나게 될 간현관광지를 다녀왔다.
아찔한 출렁다리는 소금산 구경의 시작…잔도, 울렁다리 길이 열린다
소금산 출렁다리가 간현관광지 부활을 이끌었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지난해 3월 체계산 출렁다리(길이 270m)가 놓이면서 국내 최장 산악보도교라는 타이틀은 빼앗겼지만 얼마 전까지도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200m)로 관광객들이 줄지어 건너던 곳이다.
소금산의 두 암벽 봉우리를 잇는 출렁다리를 건너려면 578개의 계단을 먼저 올라야 한다. 등산로보다는 수월하지만 도착지까지 오로지 계단만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출렁다리 매표소까지는 넉넉잡아 20여 분이 걸린다.
다리 위에서는 앞사람의 등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엉금엉금 걷는 사람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길이도 길이지만 100m가 넘는 높이 때문이다. 바닥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격자형 철제 구조물로, 발아래로 섬강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다리 전체가 상하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탓에 곧잘 걷던 사람도 한 번씩 멈춰 설 정도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발아래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면 섬강과 어우러진 소금산 일대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소금산 정상을 향해 완만하게 경사진 데크길 ‘하늘바람길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은 다시 소금산 정상 바로 아래 벼랑을 끼고 도는 소금잔도로 연결된다. 여기부터가 조만간 선보일 간현관광지의 신규 체험 시설들이다. 해발 200m 높이의 바위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잔도는 중국 장자제의 유리잔도를 연상케 한다. 소금잔도는 총 363m 길이에 불과하지만 아찔함과 짜릿함은 장자제 유리잔도 못지않다.
관계자의 협조를 받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잔도 위를 걸어봤다. 바닥이 투명 유리인 잔도는 아찔함 그 자체다. 하이라이트는 잔도 중간쯤에서 만나는 급회전 경사로 구간이다. 마치 급하강을 앞둔 놀이 기구에 올라탄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진다. 구불구불 벼랑길을 따라 이어진 잔도는 전망대 스카이타워 초입에서 마무리된다.
해발 150m 높이에 설치된 전망대 스카이타워에서는 간현관광지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잔도보다 오히려 낮은 위치에 있어 조금 싱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암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모습이 잔도 못지않은 공포감을 일으킨다. 잔도에서 앞만 보고 걸었다면 스카이타워에서는 주변 풍경을 360도 조망할 수 있다. 사람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벼랑길이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전망대는 다시 소금산과 간현산을 잇는 울렁다리로 연결된다. 출렁다리보다 2배 더 긴 404m 길이의 울렁다리에는 국내 최장 보행현수교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출렁다리와 좌우로 나란히 이어진 울렁다리를 건너면 하산길에는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출렁다리까지 이어지는 케이블카까지 설치되면 간현관광지는 다시 한번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민관광지로 거듭날 터이다.
소금산 출렁다리 아래에는 미디어 파사드 공연장이 들어섰다. 암벽을 스크린 삼아 조명과 영상을 비춰 공연하는 ‘나오라쇼(Night of Light Show)’의 무대다. 매일 밤 치악산 상원사의 설화를 소재로 한 ‘은혜 갚은 꿩’ 영상과 함께 680개 노즐과 300여 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활용한 음악분수쇼 등이 폭 250m, 높이 70m의 자연 암벽을 무대로 펼쳐진다.
2년 만에 만나는 단풍…가벼운 구룡사 산책길에서
원주까지 발을 뻗었는데 치악산 단풍 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치악산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단풍 명소다. 기상청에서 발표한 올해 치악산 단풍 절정기는 이미 열흘이나 지났지만 막상 와 보니 단풍은 이제 막 물들기 시작했다. 치악산에서도 단풍을 가장 빨리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천년고찰 구룡사를 거쳐 비로봉까지 곧장 이어지는 북쪽 구룡지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각양각색으로 물든 단풍을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구룡사 매표를 지나 구룡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금강소나무길이 펼쳐지는 구룡 테마 탐방로로 접어든다. 완만한 경사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주차장에서 구룡사 일주문인 원통문까지는 1.1㎞. 경내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조사전 아래 자리한 은행나무가 방문객을 맞는다. 수령 200년가량인 이 나무는 빛에 바랜 것처럼 연노란색을 띠고 있다.
구룡사를 지나 등산로에 접어들면 비로봉까지 4.9㎞의 탐방로가 시작된다. 단순히 단풍을 즐기려면 중간 지점인 세렴폭포까지만 다녀와도 충분하다. 그다음부터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난이도 ‘매우 어려움’의 가파른 오르막을 쉬지 않고 한 시간가량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단풍 구경이 목적이라면 어울리지 않는 길이다.
가벼운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치악산 둘레길을 걸어도 좋다. 치악산 외곽 139.2㎞를 연결한 둘레길이 지난 5년여간의 공사를 마치고 올해 6월 개통했다. 원주와 횡성·영월을 넘나드는 둘레길 중 최고의 코스로는 당둔지주차장에서 출발해 국형사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11코스 ‘한가터길(9.4㎞)’이 꼽힌다. 산길뿐 아니라 원주 구도심 마을길과 중앙선 폐선로, 둑길까지 걷는 내내 다양한 풍경과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지금은 섭재슈퍼부터 한가터삼거리 구간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임시 코스를 통해 둘러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