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경선에 일관했던 결과에 대한 성적표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확정된 뒤 그들이 그간 제시했던 공약을 분석한 뒤 내린, 여의도 안팎 평론가들의 냉정한 평가다. 경선 후보 간 정책 경쟁을 통해 공약의 빈틈을 채워 본선 초반 기선 제압에 나서야 했지만 공약의 밀도를 채울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금까지도 ‘대장동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역시 ‘고발 사주’ 의혹을 비롯해 ‘왕(王)자’와 ‘개사과’ 논란까지 설화를 자초하면서 공약을 다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다 보니 ‘미래 먹거리’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과학기술 공약이 허약한 상태로 본선에 진출했다. 성장 공약을 내세워도 실천 방안이 없는 ‘말의 성찬’이 되는 이유다. 성장을 이룰 구체적인 액션플랜이 비어 있는 자리에는 현금성 지원 정책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500여 쪽에 이르는 현재 나온 공약집은 말 그대로 캠프와 당의 입장을 모아 놓은 것에 그친다”며 “연말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공약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경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선대위도 구성되지 않았다”며 “당 차원의 검토가 시작되면 구체적인 공약 실현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겠다며 나선 양당 후보가 각종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거나 설화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5년의 청사진은 아직도 유권자가 받아보기 힘든 대선이 치러지고 있는 셈이다.
①과학·기술 공약 없는 미래 비전=최근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기업 경영진 200여 명을 대상으로 ‘과학기술 공약이 적절하게 준비되고 있는가’에 질문에 79%가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대선 과정에서 과학기술정책이 적절하게 다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80%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대선 후보들이 과학기술 분야를 중요하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66.5%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영계에서 20대 대선 후보들의 과학기술 정책의 소홀함을 직시하고 있는 셈이다. 과학기술정책에 정치권이 본래 인색했던 것은 아니었다. 19대 대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는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겠다며 미래 먹거리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행정 조직을 개편해 과학부를 설립하고 책임 부총리를 신설하겠다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맞춰 과학기술이 성장과 직결된다는 점을 각 후보들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4년여 만에 180도 상황이 바뀐셈이다. 김대진 조원C&I 대표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상을 제시해야 하는데 과학기술 정책이 빠지면서 말뿐인 성장 담론으로 정쟁만 하는 상황”이라며 “진영 간 큰 정부, 작은정부 논쟁 자체가 의미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②‘미래 부담’ 해소 없는 청년·복지=과학기술 정책을 통한 미래 비전이 없이 표 계산만 한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2030세대의 지지가 낮다는 점에서 청년을 겨냥한 현금 지원 정책을 쏟아내 미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 후보는 연 200만 원의 청년 기본 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했다. 매년 200만 원을 전국의 청년들에게 지급할 경우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점은 이미 수차례 지적됐지만 이 후보는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후보도 ‘청년 자립 프로그램’ 구상을 밝히면서 취약 청년에 월 50만 원 청년 도약 보장금 최대 8개월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후보와 달리 선별 지원론을 펼친 것이지만 결국 현금 지원을 통해 재정 부담을 키우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미래 세대 주머니에서 재원을 돌려 막는 셈”이라며 “부담은 모두 다시 청년 세대에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③성장 담론…액션플랜 없다=더 큰 문제는 ‘과학기술-미래 부담-성장’이 맞물리면서 대선 후보들이 성장을 아무리 강조해도 실천 방안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 후보는 대규모 국가투자를 약속하고 “상상할 수 없는 투자(공급)”를 주장하고 있다. 제1공약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 대신 ‘성장’을 내세웠다. 다만 성장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2일 선대위 출범식에서 이 후보는 “사회 곳곳에 도사린 ‘특혜 기득권 카르텔’을 해체해 공정성을 회복하겠다”며 “소수에 집중된 자원과 기회를 공정하게 배준해 효율을 높이고 의욕을 고취해 새로운 성장의 기반을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8일 현재까지 성장 정책과 관련한 발표는 선보이지 않았다.
윤 후보의 성장 공약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요약되지만 야권 내부조차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라는 반응이다. 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제거해 성장을 일으키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일자리 수요 공급 패러다임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과 수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국제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집중적인 재정 지원과 함께 금융시장의 자금 중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도 했지만 역시 구체적인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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