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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플라잉 타이거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41년 초 장제스 중화민국 국민정부 주석은 미국 공군에 긴급 도움을 요청했다. 때마침 일본의 공격 낌새를 감지하고 있던 미국은 공군 출신 의용군들로 구성된 ‘플라잉 타이거스(중국명 비호대·飛虎隊)’를 중국에 급파했다. 월트 디즈니는 장도에 오르는 플라잉 타이거스의 승전을 기원하며 날개가 달린 호랑이를 휘장으로 그려줬다.

하지만 플라잉 타이거스에 몸담은 파일럿들의 실력과 기강은 형편없었다. 미 공군이 우수 인력을 남기고 골칫덩어리들을 우선 선발한 탓이 컸다. 당시 미국은 공식 참전 형식이 아니라 공군 조종사들을 전역시켜 민간인 신분으로 파병했다. 그래도 이 부대의 지휘관인 클레어 셔놀트는 굴하지 않았다. 일본 전투기가 공격해오는 것을 미리 파악해 더 높은 고도에서 기다리다가 2인 1조로 기습 공격을 가한 뒤 급강하해 내빼는 전술로 일본군을 뒤흔들었다. “양키들이 비겁하게 도망 다닌다”는 조롱이 쏟아졌지만 셔놀트는 “전쟁에서 페어플레이 따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 내 신조”라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기만 전술에 말려들어 일본군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대일본제국군은 비열한 전투를 지속하는 100기의 플라잉 타이거스를 남김없이 섬멸할 것을 선언한다”고 선전 방송까지 했을 정도다. 플라잉 타이거스는 일본군 항공기 296기를 격추하고 일본군 1,000여 명을 괴멸시켰다는 등 출처 불명의 소문들만 남기고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폭격 직후 미 정규군에 편입돼 짧은 역사를 마감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최근 플라잉 타이거스 파병 80주년을 맞아 “중·미 인민들이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생명과 피로 맺은 깊은 우의를 담고 있다”고 칭송했다. 당시 파병은 장제스 정권을 위한 것이었고 그 명맥을 대만이 잇고 있는데도 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양안 문제에 대해 “불장난하는 자는 스스로 타 죽는다”고 위협한 것은 미국과 대만의 관계를 비틀려는 안간힘일 수 있다.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은 “힘이 없는 외교는 열매도 못 맺는다”고 역설했다. 주권과 역사를 지키는 첫째 길이 자강임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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