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갖고 그래.”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천문학적인 비자금 축재 등 생전의 숱한 범죄 행위에 대해 어떠한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재판에서 “억울하다”는 입장만 반복했고 이 과정에서 나온 “왜 나만 갖고 그래”는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으로 평가받는다. 최근까지도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죄 재판에 참석하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았지만 이를 끝내 거부하고 세상을 등졌다.
전 전 대통령은 생전 수차례 국회와 법정에 서면서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지난 1989년 국회 5공비리·5·18 특위 당시 증인으로 불려왔지만 발표문만 읽고 떠났다. 그가 퇴장하자 야당 의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 내란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 섰는데 이때에도 광주 유혈 진압의 당위성만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무기징역을 선도받고 복역 중 김대중 정부 때 사면됐는데도 언론 인터뷰에서 5·18민주화운동은 폭동이라는 입장을 재차 반복했다. 그는 2003년 한 방송 인터뷰에서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며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2017년 발간한 그의 회고록에는 이 같은 입장이 가장 잘 담겨 있다. 회고록에서 그는 “국군을 죽이고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으로 국군을 사살한 행동을 3·1운동과 같은 운동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며 “광주 사태 당시는 물론 그 후에도 외국 정부나 연구소 언론은 폭동·반란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심지어 북한까지도 5·18사태를 폭동이라고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발포 명령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발포 책임자가 나라고 주장하는데 서울의 사무실에 있던 내가 광주 작전 현장에 나타나 장병들에게 일일이 쏴라 말라 하며 발포 명령을 내릴 수 있었겠느냐”고 주장했다. 또 광주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진 중요한 원인은 시위대가 무장했기 때문이라며 잘못을 광주 시민에게 떠넘기기까지 했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밝힌 미국인 아놀드 피터슨 목사와 조 신부에 대해서는 “가면을 쓴 사탄이지 성직자가 아니다. 누구의 사주로 거짓말을 하는가”라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회고록 발간 소식이 알려지자 5·18기념재단 등 5월 단체에서 즉각 반발했다. 이들 단체는 회고록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가 하면 사자 명예훼손 등 소송도 제기했다. 당시 집권당인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의원조차 “전 전 대통령이 지휘 계통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억지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그가 끝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고 사망하면서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과 화해의 매듭은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첫 페이지를 마치게 됐다. 그는 회고록에서 “광주 사태 당시 나의 역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못박혀 있는 것”이라며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사이의 그 어느 시간에도, 광주의 그 어느 공간에도 나는 실재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오히려 당시 북한이 간첩을 이용해 광주교도소를 습격하라고 지령을 내리는 등 북한의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까지 내세웠다.
전 전 대통령이 끝까지 거짓 주장으로 일관하며 세상을 등지면서 진실 구명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첫 발포 명령자와 계엄군의 성범죄 등 추가 범죄 사실을 조사하고 있지만 성과를 낼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와 12·12군사쿠데타 및 5·18 사건 검찰 수사, 국방부 과거사위 및 특별조사위 등을 거쳤지만 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지휘 계통의 책임자들이 전부 관련 사실을 부인해 진실 규명이 쉽지 않다. 또 헬기 사격 책임자와 성폭력 가해자, 암매장 장소 등에 대한 조사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범죄 행위를 은폐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그간 수많은 거짓 발언과 막말도 쏟아냈다. 대표적인 것이 2,205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의 80% 이상을 미납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예금 자산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발뺌한 것이다. 검찰은 연희동 자택을 압류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징금 회수에 나섰다. 2019년에는 추징금을 여전히 미납한 상황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이 적발되기도 했다. 현장을 찾은 임한솔 정의당 부대표가 골프 비용은 누가 냈으며 추징금은 언제 낼 것이냐고 묻자 전 전 대통령은 “네가 대신 좀 내주라”는 황당한 발언을 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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