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대선 109일을 앞두고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두고 시민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짜고 치는 쇼였다’는 반응이 나오는 반면, 한편에서는 ‘일상회복 시점에서 가진 좋은 소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결과적으로는 이번 행사가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적어도 짐이 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은 지지율은 여전히 40% 안팎의 견고한 흐름을 유지했고 이 후보 지지율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의 격차를 좁혔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 위기론이 고개를 들면서 머뭇대던 문 대통령 일부 지지층이 서서히 이 후보 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국민과의 대화의 시청률 총합은 2년 전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의 진솔한 소회를 기대한 국민들 자체가 그만큼 줄었다는 방증이었다.
文 “2·4대책 더 일찍 했어야...'세계 톱10' 국가 만든 건 성과"
문 대통령은 21일 오후 7시 10분부터 100분 동안 서울 여의도 KBS에서 생방송으로 임기 두 번째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주제는 코로나19 극복 관련 방역·민생 경제 등이었다. 청와대는 일상회복 3주 진단 및 확진자 증가 대응책, 민생경제, 포스트 코로나 과제 등 3개를 소주제로 정했다. 선거·정치 현안 관련 질문은 모두 걸렀다.
문 대통령은 특히 임기 중 가장 아쉬운 점을 꼽아 달라는 질문을 받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해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드리고 무주택자들, 청년, 신혼부부들에게 내집마련의 기회를 못 드린 게 아쉽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 패널이 “투기 세력이 부동산 시장에서 서민들 돈을 빼앗는다”고 지적하자 “부동산은 여러 차례 사과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4 공급대책이 일찍 마련되고 시행됐다면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역대 어느 정부보다 입주 물량이 많고 인허가 물량도 많았다. 앞으로 계획된 물량도 많아 공급 문제는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은 이어 “부동산 가격도 상당히 안정세 접어들었다. 남은 기간 하락 안정세까지 목표로 두고 있다”며 “다음 정부까지 어려움이 넘어가지 않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확실히 찾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의식한 듯 “민간 개발업자들이 과다한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여러 대책들을 정부가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관련 법안들도 국회에 제출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와 달리 방역 문제에 대해서는 큰 자신감을 보였다. 무엇보다 임기 중 최대 성과로 K-방역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을 높인 점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K-방역을 비롯해 대한미국 위상이 아주 높아져 지금은 거의 세계 톱10”이라며 자화자찬이 아니니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백신 접종을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접종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역설했다. “위중증 환자 증가세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정부는 5,000~1만명까지도 확진자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비했다”며 “병상을 빠르게 늘리고 인력을 확충해 우리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답변했다.
요소수 부족 사태와 관련해서는 “문제를 일찍 파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해서 지금은 문제가 거의 다 해소됐다”고 자신했다.
“영광” “존경” “감사”...상당수 참여자들 대통령에 ‘애정’ 표시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국민과의 대화가 문 대통령 본인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마련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단계적 일상 회복 국면에서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급증하자 이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정권 재창출의 당위성을 우회적으로 강조할 목적도 있던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특히 문 대통령에게 질문한 패널들 상다수가 대통령에게 의례적인 예의 표시 이상의 우호적 발언을 내놓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현 정부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애초에 문 대통령을 마주할 의사가 없어 참여 신청을 덜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아 현 정부에 더 바랄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런 탓에 행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날카로운 질문은 극히 적었다.
A패널은 문 대통령에게 방역 관련 질문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K-방역은 전 세계가 다 주목하고 인정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며 “이것은 전부 다 우리 대통령님의 지도와 영도력으로 잘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B패널은 본 질문 뒤에 돌연 “임기는 아직 남아 있지만 지난 국정운영 기간 동안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짙은 애정이 묻은 표현들이었다.
“영광”이라는 표현을 쓴 국민 패널도 여럿 있었다. C패널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님을 만나뵐 수 있어서 너무 너무 영광”이라며 “지혜로운 대통령님께서 제 의견을 얼마만큼 받아서 이행하실지 모르겠지만 어려운 사람들 먼저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D패널도 “대통령님을 뵙게 돼서 영광”이라며 “5년 임기가 다 되셨는데 5년 동안 참 좋은 일을 많이 해 주셔서 우리나라가 금년에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정말 대통령에 대해 국민으로서 뿌듯하고 자부심을 이만큼 느낀 때가 언제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며 “나라는 선진국이 됐는데 서민경제는 아직 선진국을 못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을 이었다.
E패널도 “대통령님을 만나뵙게 돼서 너무 영광”이라고 말했고 F패널은 “지역 시민을 대표해서 질문한다. 대통령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강조했다. G패널은 “대통령님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아들이 같이 오고 싶어 했는데 오지 못했다”며 화면 상으로 아들에게도 인사를 한 번 해 달라고 문 대통령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거론하는 패널은 아무도 없었다.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세금·전월세 부담을 언급한 사람도 없었다. 대신 부동산 투기 세력이 서민의 재산을 빼앗는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부자들이 빈민들을 더 도와야 한다, 가짜뉴스는 그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른 분야에서도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은 질문은 거의 없었다.
박수현 “자화자찬 비판 근거 대라”…탁현민 “쇼 잘하고 못하고 차이”
이 행사를 둘러싼 여야 반응은 예상대로 상반됐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민과 정부가 합심해 코로나를 이겨내고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한발 나아갔기에 가능했던 소중한 자리였다”며 “지난 4년 반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의 성과와 부족했던 점을 진솔하게 평가하고 국민이 만든 높아진 국격의 위상을 논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반면 임승호 국민의힘 대변인은 같은 날 구두논평에서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빛깔마저 좋지 않은 ‘빛바랜 개살구’”라며 “문 대통령은 국민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고 자신만의 환상에 빠진 '돈키호테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혹평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코로나로 인한 소득 격차와 교육격차 문제,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 문제에 대해 대책을 요구하는 질문에도 원론적인 답변뿐이었다”며 “임기 말 마지막 국민과의 대화였음에도 국정운영 5년 동안 심화됐던 불평등과 불공정 문제에 대해 진솔한 사과나 책임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다음 날인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야당 측 주장을 적극 반박했다. 박 수석은 “문 대통령은 정말 비교적 진솔하게 솔직하게 답변을 하셨다”며 “(패널들을) 나이, 성별, 지역 등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선별했고 질문 내용 자체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야당의 비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마무리 말씀으로 ‘자화자찬 또 하냐라는 비판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전제했다. 그럼에도 또 자화자찬이라고 비판했다”며 “대통령 말씀대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을 넘어서는 것은 무리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이룬 성취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다. 역대 정부가 이런 성취들을 쌓아 온 것이고 우리 국민이 이룬 성취인데 이것마저도 폄훼한다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문 대통령이 이야기한 내용 중 청와대 브리핑이나 정부 이야기 중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을 과장해서 이야기한 부분이 있으면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라”고 역설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같은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야당 측 비판을 두고 “본인들이 항상 문 대통령이나 정부 가 쇼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딱 한 가지가 다른 건 ‘잘하고 못하고’”라며 “본인들이 하는 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국민과의 대화에 대본이 있었다는 KBS 노조의 주장에 대해 22일 “질문 내용을 사전에 알 수 없었고 답변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였다”고 부정했다.
與 지지층 결집으로 간격 좁히는 尹·李…文 지지율 조금씩 이동
문 대통령의 임기 두 번째 국민과의 대화는 적어도 대통령 본인과 이 후보에게 큰 호재도 아니었지만, ‘악수(惡數)’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40% 안팎을 유지했다. 한 때 윤 후보에 10% 안팎까지 뒤처졌던 이 후보 지지율도 오차범위 근처까지 근접했다는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정권 교체 위기론이 불거지면서 이 후보 지지를 망설이던 문 대통령 지지층이 조금씩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절대로 보수 후보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결집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나아가 이 후보 측이 최근 문재인 정권과 차별화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관대한 입장을 취했다. 박 수석은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200% 수용한다”고 말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 후보의 ‘정권교체·심판’이라는 구호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에 대해서도 “임 전 실장이랑 통화를 했다”며 ‘이 후보의 차별화 전략이 서운할 일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다만 이번 국민과의 대화는 생방송 시청률은 합산 7.9%를 기록, 2019년 11월 첫 국민과의 대화 시청률 총합인 22.1%보다 크게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들이 정권에 더 요구할 게 없는 임기 말인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진단된다. 조국 사태, 부동산 폭등에 따른 정권 위기 상황에서 치러진 2년 전 행사조차 ‘팬미팅’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큼 분위기가 느슨했던 점도 두 번째 행사의 기대치를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국민과의 대화 시청률의 대폭적인 하락은 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관심과 대선 정국에 대한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정권 교체와 재창출의 기로에 선 문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됐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앞으로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정 과제는 방역·대북정책 등이다. 자칫 임기 말까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무런 대화 신호를 보내지 않거나, 이웃국가 일본·중국·대만·홍콩과 달리 한국에서만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 가도를 달린다면 이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26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아래 4명의 국정원 차장(차관급) 중 무려 3명을 단번에 갈아치우는 인사를 단행했다.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 물밑 교섭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또 오는 29일 청와대에서 위중증 환자 병상 확보, 추가 접종 등을 논의하기 위한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로 했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임기가 6개월 남았는데 아주 긴 기간”이라던 문 대통령의 발언이 가볍지만은 않게 들린 이유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