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의정부 을지대병원에서 일하던 신입 간호사가 사망한 사건을 두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망한 간호사가 이른바 ‘태움(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괴롭히는 행위)’을 당했다는 주장에 이어 사측이 위법한 근로계약을 맺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인력 부족과 열악한 처우로 압축되는 간호계의 고질적 병폐를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극단적 선택을 한 9개월차 신입 간호사 오 모(23) 씨는 혼자서 20명이 넘는 환자를 담당하고 한 달 10만원의 식비 중 4,200원밖에 쓰지 못하는 등 격무에 시달렸다. 유족은 선배 간호사가 오씨의 차트를 집어던지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사망 당일 상사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으나 ‘근로계약에 따라 60일 전에 사직서를 내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는 병원의 근로계약서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병원 측은 문제가 된 계약서 조항은 경각심을 주는 차원이었을 뿐 퇴사 의사를 밝히면 시기와 관계없이 사직 처리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간호 현장에서는 원할 때 일을 그만두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교대 근무다보니 한 명이 퇴사를 하면 동료들의 부담이 그만큼 커지는 구조”라며 “퇴사 순번을 정해놓고 자신의 퇴사 순서가 오거나 신규 인력이 충원될 때까지 참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간호사 및 간호계열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퇴사 의사를 밝혔는데 수간호사가 받아주지 않아 ‘응급사직(근무시간에 무단결근하고 잠적하는 것)’하려 한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이용자는 지난 22일 올린 글에서 “몸이 아파 약을 먹으면서 다녔는데 상사가 한 달간 ‘그 정신으로 무슨 일을 하냐’는 지적을 해 퇴사 면담을 했다”며 “이후 선배들에게 ‘아프다는 말을 못 믿겠다’ ‘다른 병원 붙은 거면 솔직히 말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사 면담 후 자살한 (오씨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밝혔다.
지난 2018~2019년 고(故) 박선욱·서지윤 간호사의 극단 선택으로 공론화된 태움 문제도 여전하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가 지난 8월 간호사 5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태움을 당하거나 목격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8%(362명)에 달했다. 태움 유형은 욕설·무시·비하 등 폭언이 77%(410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일반 종합병원에서 간호사 1명이 봐야 하는 환자가 평균 20명 이상”이라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몇 안되는 경력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 교육까지 하다보니 말이 거칠게 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간호 현장의 근무환경 개선과 인력 충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 국장은 “3교대 근무로 노동 강도가 강한데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병원 처우가 개선되지 않다보니 신규간호사의 절반이 1년도 안 돼서 퇴사를 한다”며 “인력 충원,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도 “일본은 관련법에 간호사 한 명당 담당 환자를 최대 7명으로 규정해뒀다”며 “당장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공공병원에 한해 시행 중인 ‘교육전담간호사’ 제도를 다른 종합병원으로도 확대해서 업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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