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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충절 깃든 남강 따라…巨富의 기운이 솟다

■ 배산임수 명당 '경남 진주'

비봉산 아래 너른 평야 펼쳐지고

그 앞에 유유히 흐르는 오백리 물길

일몰전후 황금빛 물든 진양호 장관

진주대첩 넋은 '유등축제'로 위로

부자 넘치고 교육열 품은 승산마을

이병철·구인회 등 韓경제 거목 배출

진주남강유등축제로 환하게 밝혀진 진주성 야경. 남강유등축제는 코로나19로 2년 만에 재개됐다가 지난 12일부터 일주일간 일시 중단됐다. /사진 제공=지엔씨21




비봉산 아래 너른 평야가 펼쳐지고 그 앞으로 유유히 남강이 흐른다. 경남 진주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명당으로 불린다. 예나 지금이나 땅이 기름지고 곡식이 넘쳐나는 살기 좋은 곳에는 사람이 모여들고 물산이 풍족해 우수한 인재들이 끊임없이 배출됐다. 왜군을 물리친 진주성과 의기(義妓) 논개가 낙화한 촉석루, 국내 최고의 기업인들을 배출한 승산마을까지 남강 물길을 따라 호국의 역사를 품은 진주를 다녀왔다.

덕천강과 경호강이 만나 이뤄진 진양호는 진주시민의 식수원이자 휴식처다. 사진은 일몰 때 내려다본 진양호의 모습.


남강 물길을 따라 이어진 명당 진주의 역사



여행의 출발은 남강의 시작점인 진양호다. 진양호는 덕천강과 경호강이 만나는 곳에 조성된 인공 호수다. 함양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은 진양호를 거치면서부터 남강으로 불린다. 1970년대 남강댐이 들어서기 전까지 매년 물난리에 시달리던 진주는 댐 건설 이후 홍수에서 해방됐고 물길이 바뀌면서 도시도 확장됐다.

진양호 휴게 전망대는 바다처럼 사방으로 탁 트인 풍광이 압권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호수 뒤로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산 그림을 그려주고 제일 끝에 지리산 주능선이 펼쳐져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전망대까지는 365개의 계단이 이어진다. ‘일년계단’이라고 불리는 이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해서 ‘소원계단’이라고도 한다. 일몰 전후에 맞춰 가면 황금빛으로 물든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남강 물길을 따라가면 임진왜란 전적지인 진주성과 만난다. 해마다 10월이면 진주성 일대는 남강유등축제로 환하게 밝혀진다. 남강유등축제는 진주대첩(1592~1593)에 기원을 두고 있다. 조선군은 남강에 유등을 띄워 왜군을 저지하고, 한편으로 성 밖의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진주성이 왜군에 함락되면서 7만 명의 조선인이 순국하자 진주 사람들은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우기 시작했고 이것이 진주남강유등축제로 이어졌다. 진주대첩이 시작된 10월에 개최돼온 축제가 올해는 코로나19로 두 달 늦춰졌는데 축제가 열린 지 일주일 만인 지난 12일부터 일주일간 중단된 상태다. 축제 재개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진주성과 남강이 어우러진 멋진 야경은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다. 누각인 촉석루 위로 올라서면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한 의암을 조망할 수 있다.

사진에서 아래쪽 한옥이 모여 있는 곳이 승산마을이고 실개천 넘어 오른쪽 윗부분이 지수보통학교다.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 주민들은 산 넘어 함안·의령까지 땅을 소유하고 있던 부호였다.


풍수지리보다 교육열이 더 강했던 지수보통학교



남강이 진주를 빠져나가기 전 합류하는 지수천 인근에는 또 하나의 명당이 있다. 바로 지수면 승산마을이다. 868가구, 1,800여 명이 사는 이 시골 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봉황이 둥지로 내려앉는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명당이라고 전해진다. 이른바 고관대작이 속출한다는 땅이다. 실제로 조선 시대부터 이 마을에는 만석꾼과 천석꾼이 여럿일 정도로 부자가 많이 모여 살았다.



땅 부자가 많던 시골 마을이 지금까지도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교육’ 때문이다. 1921년 당시로는 신식 교육 시설이던 지수보통학교에는 인재들이 몰렸다.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선하고 창의적인 어린이’라는 교훈대로 이곳은 전후 한국 경제를 이끈 경제인들을 대거 배출한 기업가의 산실 역할을 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는 재계 인사가 여럿인데, 1980년대 한국의 100대 재벌 중 30명이 이 학교 출신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1980년대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100대 기업인 중 30명이 지수보통학교 출신으로 나타났다.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럭키금성(LG) 창업주 고 구인회, 효성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이 대표적인 이 학교의 졸업생들이다. 당시 함안에 살던 조 회장과 의령에 살던 이 회장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와 유학 생활을 하기도 했다. 세 사람은 지수보통학교 1회 졸업생으로 이웃집에 살며 가깝게 지냈고 한때 동업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승산마을 가옥들은 대부분 사람이 거주 중이어서 내부를 둘러볼 수 없다. 사진은 GS그룹 허씨 집안 자손의 가옥.


교내에는 한국 재계의 ‘거목’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교문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본관 앞뜰에 이·구·조 회장이 함께 심었다는 ‘부자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이들이 뛰놀던 운동장과 동상들도 수십 년 전 모습 그대로다. ‘부자 소나무’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면 부자의 기운을 받는다는 소문 때문인지 소나무 앞은 공식 포토존이 됐다. 학교는 마을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2009년 폐교됐고 기업가 정신을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기업가 정신 교육센터와 대한민국 기업역사관으로 재탄생을 앞두고 있다.

도로 하나를 건너면 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승산마을이다. 승산마을은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의 집성촌이다. 두 집안이 사돈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한 마을에서만 수백 년 넘게 가족이자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 구 회장과 GS그룹의 창업주 고 허만정 회장도 이들의 후손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150여 채의 기와집이 있었지만 현재는 50여 채만이 남아 있다.

승산마을에 사는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는 사돈지간으로 오랫동안 한 마을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승산마을은 돌담 너머로 이웃집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마을의 집주인은 대부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기업 회장과 그의 자손들이다. LG 창업주인 구 회장을 비롯해 구자원 전 LIG 회장,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GS그룹 창업주 허 회장과 허창수 회장, 허승효 알토전기 회장, 허정구 전 삼양통상 회장의 생가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이 회장이 지수보통학교 재학 시절에 지냈던 매형 허순구의 가옥도 남아 있다.

한 방문객이 승산마을 한 재벌의 생가 대문 문고리를 잡고 있다. 재벌 집 문고리를 잡으면 부의 기운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지수천을 따라 20분 정도를 걷다 보면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지금도 실제 거주하는 집들이 대부분이라 내부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담벼락 너머로 살짝 보이는 재벌들의 생가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마을과 지수보통학교 사이에 효주 허만정 선생을 기리기 위한 효주공원이 조성돼 있고 마을 뒷산에는 부자마을전망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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