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상황이 비슷했던 4건의 근로자 사망 사고가 떠올랐습니다.”
지난 8일 충남 소재 한 제조 중소기업 A사를 불시 점검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소속 이근배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살펴본 뒤 한 말이다. 이 감독관의 말을 들은 A사 관계자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해당 사업장은 근로자가 50명 이상으로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대상이다. 하지만 지난 2017년부터 5년간 단 1건의 산업재해 신청도, 이로 인한 근로 감독도 없었던 ‘안전한 사업장’으로 인식됐다. 특히 대기업 협력사라 국제표준 안전보건경영시스템(ISO45001)까지 받았다. 불시 점검 40분 만에 5건의 지적 사항이 나오자 A사 관계자는 “정말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의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A사처럼 안전 인증을 받아도 언제든 사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은 A기업의 부속 공장에 설치된 호이스트 크레인으로도 불리는 천장 크레인을 가장 먼저 지적했다. 제조업 공장이라면 대부분 설치된 크레인의 전선을 감은 검정 테이프가 심하게 벗겨졌기 때문이다. 크레인 옆에는 화물을 고정하는 줄들이 쌓여 있는데 군데군데 검은 기름때가 보였고 실밥이 터진 줄도 있었다. “이러면 줄이 끊어질 수 있다”고 말한 이 감독관이 더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 것은 지게차다. 그는 “공장에 들어올 때 보니 안전벨트를 안 하고 운전하던데”라면서 지게차 운전석으로 올라타더니 꽂혀 있던 열쇠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바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보였다. 하지만 이 감독관은 “열쇠를 꽂은 채로 두는 일이 잦은가”라고 A사 관계자에게 물어본 후 직접 안전벨트를 맸다. 그는 이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장치는 11만 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게차는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설물이다. 지게차는 운전 미숙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졌을 경우 10명이 달라붙어도 들어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이곳은 지게차가 1대뿐이지만 큰 사업장은 수십 대가 넘는다.
공장 안으로 들어간 이 감독관이 “이것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시설물은 사다리를 임시로 장착한 작업대다. 3m 남짓한 높이의 시설물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형광등에 있는 등을 교체할 때 쓴다고 했다. 하지만 사다리를 오르고 내릴 때 짚을 난간도 없었고 맨 위 작업대 난간도 성인 무릎 높이 정도였다. 고용부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사다리에서 추락해 사망한 근로자는 143명이었는데 31명은 2m 이하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누구나 손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는 사다리와 관련된 사망 사고 가능성을 언급하자 A사 관계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공장 뒤편에 있는 지붕은 강풍에 날라간 것처럼 3분의 1 정도 천막이 없었다.
이 감독관은 “몇 년 전 지붕 공사를 하다가 떨어져 근로자 2명이 사망했다”며 “반드시 전문업체를 통해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외에도 이 사업장에서는 수십 개 넘게 쌓여 있는 나무 팰릿과 화물차가 창고에서 물품을 옮기는 주변의 난간, 근로자들이 쓰는 전열기 뒤편의 배선 등이 지적됐다.
A사는 그나마 지적 사항이 덜 나온 안전한 사업장이라고 한다. 이 감독관은 “이곳은 프레스와 같이 끼임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장비가 없는 등 위험 요인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며 “위험 시설이 있는 제조업체의 경우 실제 작업자의 동선, 버릇 등까지 체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B 지청 감독관은 “올 8월 감독관이 다녀간 지 한 달 만에 대전의 한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인증을 받아도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면 사고를 막지 못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기업들의 중대재해법에 대한 가장 큰 불안감은 어떤 사업장에서도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데 처벌이 너무 세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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