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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대통령, 미래 위해 욕 먹을 각오하고 연금·노동 개혁 앞장서야” [청론직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독일·프랑스 등 재정 정상화, 우리만 ‘돈 뿌리기’ 역주행

탈모 건보 적용·사병 월급 200만원 등 심각한 포퓰리즘

부자증세로 갈라치기 말고 ‘넓은 세원·낮은 세율’로 가야

수석회의 아닌 국무회의 중심 돼야 ‘청와대 정부’ 벗어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가 10일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무조건 돈 풀기에 올인할 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재정 건전성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정책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권욱 기자






20대 대선을 57일 앞두고 포퓰리즘이 도를 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모두 수십조 원 규모의 자영업자 손실보상과 사병 월급 200만 원으로 인상 등을 외치고 있다. 올해 누적 국가 채무는 전망치 1,064조 원에 추가경정예산 편성까지 더해지면 1,100조 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문재인 정부 5년 사이에 나랏빚이 404조 원이나 폭증하게 되는데 이는 미래 세대에 엄청난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재정 정책 전문가인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10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의 공약에 대해 “표만 된다고 생각하면 공약을 내놓았다가 실현이 어려울 것 같으면 말을 바꾸고 있다”면서 “포퓰리즘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허경영식 포퓰리즘’이라고 깎아내렸다. 박 교수는 “독일·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해 펼쳤던 정책들을 정상화하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만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이어 “무조건 돈 풀기에 올인할 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재정 건전성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정책 과제를 선정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후보들이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각 후보들이 검증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약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것 같다. 어젠다 세팅, 실현 수단, 과정 관리, 결과 도출 등에 대해 평가받겠다는 구체적 그림을 갖고 유권자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표만 되면 내놓았다가 실현이 어렵다고 생각되면 금세 말을 바꾸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핵심은 빠진 채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려 하고 있다.

-자영업자 손실보상 등 현금 살포 공약이 무분별하게 나오면서 재정 건전성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을 위해 재정을 푸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코로나19 재난 상황이 현재 진행형인지, 더 나아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극복을 위한 재정투자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실제로 주요 국가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해 펼쳤던 정책들을 정상화하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려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거꾸로 행보를 하고 있다. 더구나 연초부터 여당이 최대 30조 원에 달하는 추경을 편성하라며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전형적인 선거 포퓰리즘이다. 이를 막아줘야 할 국회가 외려 ‘기획재정부의 나라냐’며 호통이나 치고 있으니 기재부도 책임 행정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재명 후보가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을 약속하는 등 포퓰리즘이 도를 넘는다는 지적이 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 추계에 따르면 오는 2023년 건보 부채비율은 132%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케어’로 보장성 항목이 늘어난 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건보 진료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심 공약만 남발하는 것은 국가를 운영해보겠다는 리더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여당은 탄소세·국토보유세 등 각종 세금 신설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앞서 조세 체계부터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법인세와 재산세 비중은 너무 높고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비중은 낮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 대원칙을 무시하고 ‘부자 증세’와 ‘기업 쥐어짜기’로 치달은 결과다. 단적으로 부가가치세율이 10% 정도인데 이를 OECD 평균인 19.3%(2020년 기준)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당장은 코로나19 확산과 소비 위축 효과 때문에 신중해야겠지만 차기 정부가 준비를 시작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40%에 달하는 면세자도 점차 줄여 사회 전체적으로 세금을 내고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인식이 뿌리내려야 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여당에서는 기재부의 예산 편성 기능을 청와대 혹은 총리 직속으로 두자는 의견까지 나왔는데.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제 경향이 강한 만큼 예산 편성 기능을 청와대 직속으로 두면 폐해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대통령 5년 단임제이므로 재정 건전성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마구 써버릴 위험성도 있다. 기재부의 예산 편성과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 전체를 거시 총량 중심으로 바꾸고 부문별 한도 설정 등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재부는 총액과 한도만 결정하고 개별 부처가 구체적 사업을 결정하는 ‘총액 배분, 자율 편성’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재정 개혁 측면에서 국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기재부 예산실만으로는 중장기 재정 준칙에 근거한 거시 재정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지 견제할 수 있는 국회 심의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국회에는 거시적 관점의 예산 심사 능력 부재, 예결위원의 전문성 부족, ‘쪽지 예산’ 등 여러 문제점이 있다. 예결위원의 임기가 짧아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지역 현안에 휘둘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회가 거시 재정에 대한 설계와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키우는 한편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국회예산정책처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기간에 일자리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 2010~2020년 평균으로 따지면 우리나라 전체 실업률은 3.6%, 청년 실업률은 10.1%로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3배에 달한다. 특히 청년 실업률 증가 속도가 OECD 회원국 가운데 5위를 차지한다. 매년 일자리 예산으로 30조 원씩 쏟아붓고 있지만 성과는 미흡하다. 607조 원이 넘는 올해 예산 가운데 5%가량을 고용 지원에 쓰는데도 성적표가 낙제점이라는 것은 일자리 정책이 실패했다는 증거다.

-노동 개혁 필요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국내 노동시장은 10%의 대기업, 공공 부문 정규직 노조원과 나머지 90%의 중소기업·비정규직 비(非)노조원으로 구분된다.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인해 대기업이나 공기업 취업이 어려워지고 청년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 불과하다. 노조가 대기업, 공공 부문 등 가진 자의 이해만 대변하면서 기득권을 독점하는 구조인 탓에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해야 하는 청년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최근 국회가 밀어붙이는 공공 기관 노동이사제도 경영 투명성 제고라는 노동계의 주장과 달리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소득 주도 성장처럼 의도는 선하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연금 개혁이 시급하지만 여야 양대 정당 후보들은 관련 공약을 내놓지 않았는데.

△8대 공적 보험 고갈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4대 연금(국민·공무원·군인·사학연금)과 4대 보험(고용·산재·건강·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한 의무 지출액이 올해 90조 원, 2년 뒤에는 100조 원을 돌파한다. 매년 적자 보전에만 20조 원이 넘는 혈세를 투입해야 한다는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도 나왔다. 2018년에 정부는 소득의 9% 수준인 보험료율을 11~15%로 올리거나 기초연금을 2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 등 4개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마련해 국회로 보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외면하면서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득 대체율을 60%에서 40%로 깎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월 소득 기여율을 7%에서 9%로 올렸다. 미래 세대를 위해 대통령이 결단한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 등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추진해야 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가 10일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지금처럼 수석보좌관회의가 아닌 국무회의 중심의 정책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권욱 기자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행정부 각 부처의 독립성이 매우 취약해졌다.

△헌법에 삼권분립이 명시됐지만 청와대가 행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사법부 독립도 무너진 상태다. 주요 정책 결정도 국무회의보다는 주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뤄지고 있다. 청와대 입김에 좌우되는 수석보좌관회의가 아닌 각 부처의 의견이 충실히 반영되는 국무회의에 힘이 실려야 한다. 이를 위해 ‘책임장관제’가 정착돼야 한다.

-넉 달 뒤에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역대 정부를 보면 국정 과제라는 명분에 얽매여 추진하다 보니 현실과 괴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상당수의 대선 공약들이 캠프에서 만들어진다. 정당에서 치열한 토론과 면밀한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소수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100대 국정 과제 등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2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도출되는 국정 과제가 완벽할 수는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촘촘한 평가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국무조정실의 평가국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가칭)국정평가원’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국정 과제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현재 행정연구원 내 국정평가실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공공기관연구센터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으므로 이 기관들을 합쳐 ‘국정평가원’으로 출범시키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He is…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초대 예산분석심의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초대 소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정세제위원장, 교육개혁포럼 회장, 한국지방세학회 회장, 한국정책학회 회장 등도 지냈다. 주요 저서로 ‘한국교육 거듭나기’ ‘재정 관리-나라살림 길잡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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