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다음 5년을 이끌 대통령을 선출할 선거가 50일 앞인데도 유권자 3분의 1이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누구도 찍지 않겠다”는 표심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정치권이 집도 주고(청년주택) 돈도 주겠다(청년기본소득)며 지지를 호소한 청년층은 오히려 현재 나온 대선 후보들을 찍지 않겠다는 마음이 콘크리트처럼 굳고 있다. 심지어 지난 4년 내내 ‘정권 교체’를 외쳐온 보수층에서 현재 나온 후보들을 찍지 않겠다는 응답이 늘면서 보수 결집 효과마저 희석되는 상황이다. 비전을 보여주기보다 재정에 기대는 포퓰리즘과 남녀를 갈라치는 ‘편 가르기’에 부동층의 정치 혐오가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경제·한국선거학회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11~13일) 결과 “찍을 만한 후보가 없다”는 응답이 77.8%를 기록했다.
선거 100일 전 시행한 1차 조사와 비교하면 지난 50일간 부동층(후보 미정, 지지 후보 없음 등)은 34.7%에서 30.9%로 3.8%포인트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찍을 후보를 정하지 못한 30.9% 가운데 표를 줄 인물이 없다는 여론이 같은 기간 70.0%에서 77.8%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 50일간 부동층 10명 가운데 1명만 지지 후보를 정했고 나머지 9명은 누구도 찍지 않겠다는 양상이 더 심화한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정치권이 지난 50일간 이번 대선에서 승부처로 꼽고 있는 청년과 중도, 수도권, 나아가 여성층에 자리 잡은 부동층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 주택 250만 가구 공급(이재명·윤석열)부터 △기본주택(100만 가구) △수도권 광역철도 신설·연장(윤석열) △청년 내각(안철수) △성평등임금공시제(심상정) 등의 공약들이 이른바 ‘중수청+여’의 마음을 사지 못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부동층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더 외면하게 했다는 설명이 더 들어맞는다.
실제로 부동층 가운데 청년층에서 찍을 후보가 없다는 답변이 84.7%로 1차 조사(70.7%)에 비해 14%포인트나 증가했다. 이는 성별과 연령·지역·학력 등 모든 계층에서 가장 높은 비율로 상승한 수치다. 소위 20대 청년 부동층에서 ‘누구도 찍지 않겠다’는 의중이 더욱 확산된 결과다. 기존 후보들이 내놓은 청년 정책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는커녕 오히려 외면하게 한 셈이다.
여야 모두 공을 들여온 수도권에서도 부동층이 투표를 하지 않을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 약 840만 유권자의 표가 달린 서울 지역의 부동층에서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비율은 71.4%에서 83.7%로 12.3%포인트 치솟았다. 또 약 1,350만 표가 걸린 인천·경기에서도 부동층 가운데 찍을 후보가 없다는 답이 79.1%로 지난 조사에 비해 2.6%포인트 증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에서 ‘스윙보터(승부를 결정하는 표심)’ 지역인 대전·세종·충청의 부동층도 마음이 더 굳어졌다. 이 지역에서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80.0%로 지난 조사(72.1%)에 비해 7.9%포인트 증가했다. 전체 유권자의 50%, 약 2,200만 표가 걸린 수도권에서 부동층의 마음이 대선 50일 전까지 어느 후보에게도 움직이지 않았다. 전제 유권자(20대 총선 기준 4,399만 명) 가운데 60%(2,669만 명)가 걸린 수도권과 충청의 부동층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결과가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등 남녀의 편을 가르는 공약 등의 여파로 여성 부동층도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여성 부동층 가운데 지지 후보가 없다는 답은 78.7%로 지난 조사(70.8%)에 비해 7.9%포인트 증가했다. 또 정권 교체를 원했던 보수층(11.6%포인트)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정 운영 부정층(10.2%포인트)에서도 투표할 후보가 없다는 여론이 각각 10%포인트 이상 뛰었다. 부동층에서 정권 교체의 열망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선거학회는 정치권이 극단적인 공약으로 자신의 지지 기반을 강화하는 행태가 부동층의 마음을 더욱 닫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조사에서 ‘누가 당선돼도 마찬가지(11.6%)’라는 답이 ‘찍을 후보가 없다(77.8%)’는 답의 뒤를 이은 결과만 봐도 부동층이 현재의 대선 후보들에게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심리가 나타난다. 박선경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 한두 달 전에는 보통 자신의 지지 기반이 아닌 계층에 지지를 호소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반대로 가고 있다”며 “양대 후보 모두 안정적인 지지율이 나오지 않으니 청년 등을 ‘편 가르기’로 지지층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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