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우애와 화목을 다지는 민족 고유의 명절이다. 코로나19로 모임 자체가 어려워졌지만, 연휴 기간 만나는 일가 친척들과의 대화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설 연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대화 주제로는 취직, 연봉 등 직장 관련 질문이나 결혼, 연애, 출산에 관한 사적인 질문들이 거론된다. 명절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민감한 대화 주제와 직설적인 대화법에서 기인할 수 있다. 심지어 명절 이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올해는 가족, 친지 간 정을 돈독히 하자는 설 명절의 취지에 맞게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는 대화법'을 배워보면 어떨까. 한규만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봤다.
◇ 직설적인 표현은 피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기
명절에는 직설적인 방식이나 민감한 화제로 대화를 시작해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서구권에서는 가족 간이라도 지나치게 사생활을 침범하거나 간섭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대화 규칙이 잘 지켜진다. 그에 반해 한국 사회에선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하겠지’, ‘가족끼리 하지 못할 말은 없어’라는 생각에 예민한 주제들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부모, 자식 사이나 형제, 자매 사이에는 서로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 간에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니까 잘 들어’, ‘부모 말 들어서 손해 볼 것 없다’라는 식의 대화법으로 자신의 뜻을 강요한다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내가 내뱉은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지 고민한 후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범하는 대화 주제는 피하기
부모 혹은 친척들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너는 도대체 언제 결혼 할거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옆집 아들은 좋은 회사에 다녀서 연봉이 얼마인데, 너는 언제 취직할 거니?’라는 식의 대화 주제를 꺼낸 적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질문을 듣는 사람은 금세 기분이 상하고 말 것이다. 상대방을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선의의 질문이라 해도, 듣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적 영역이 침범 당한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걱정이 되더라도 가급적 명절 때는 이런 예민한 대화 주제를 피하는 것이 좋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만약 가족, 친지로부터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을 받게 되어 기분이 상했더라도 그 자리에서 화를 내거나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다. 감정적으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대화가 오고 가다 보면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다음에는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정도로만 대답하고 대화 주제를 벗어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 가깝고도 어려운 고부지간, 이해와 공감은 필수
설이나 추석 명절 이후 이혼 얘기가 나오는 부부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부부들 중에는 명절 간 발생한 고부 간의 갈등이 부부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다른 집들 며느리는 전날 와서 일을 돕는데, 너는 왜 일찍 와서 돕지 않느냐?’라며 비교하는 말을 한다면 고부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 시어머니 입장에선 며느리가 하는 일이 서툴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직접적으로 비난하거나 친정 부모의 탓으로 돌린다면 며느리에겐 분노만 쌓일 것이다.
물론 무조건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서로 간의 불만이나 화를 키워 명절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를 속으로 삭히기 보단 상대방의 입장을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차분히 설명하는 것이 좋다. 한규만 교수는 “시어머니가 과거 며느리로서 힘들었던 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며느리에게 공감의 표현을 하면 고부 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며 "며느리의 친정 식구 안부를 먼저 챙기는 것도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 대화의 주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올해는 최근 화제가 되는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새해 소망’, ‘건강’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만한 주제를 꺼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윷놀이나 퀴즈게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서로 간의 벽을 허물고 쉽게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치와 같이 각자 갖고 있는 견해가 확연히 다르고 서로 간 절충될 수 있는 측면이 적은 주제는 명절 때 꺼내지 않는 편이 낫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척들 간에 현명한 대화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차분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있더라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생각해 놓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명절을 앞두고 가족이나 친지 간에 오고 갈 것으로 예상되는 대화를 리허설 하듯이 마음 속으로 생각해 보길 권한다"며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표현하는 연습을 해본다면 가족, 친지 간 정을 돈독히 하는 설 명절의 취지를 더욱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