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금메달이요? 은행의 조그만 개인 금고에 보관료 내면서 소중하게 가지고 있죠. 이번 올림픽 금메달도 애 엄마가 거기 넣을 수 있게 다 준비해 놓았어요.”
‘스노보드 천재’ 클로이 김(22·미국)의 아버지 김종진(65) 씨는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집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아내 윤보란 씨 등 가족들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남자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클로이 김은 전날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따 여자 선수 최초로 이 종목 2연패의 새 역사를 썼다. 그는 세계선수권과 X게임에서 금메달 8개를 수집하고 미국 TV 프로그램과 영화·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 세계적인 스타다.
김 씨는 이날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결선 진출이 걸린 예선이 늘 조마조마한 법인데 잘 넘겼다. 다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한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금메달은 온전히 딸이 이룬 것이고 우리는 지켜보기만 한 입장이어서 결과에 대해서는 따로 말할 게 없다”고도 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열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김 씨는 당시 본지 보도를 보고 신문사에 연락해온 외삼촌과 거의 4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일도 있었다.
클로이 김이 지난 10일 금메달을 목에 건 뒤 부모님과의 통화에서 건넨 첫 마디는 “집에 돌아가서 빨리 보고 싶다”였다고 한다. 아버지 김 씨는 과거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훈련과 이동을 함께한 딸의 전담 매니저이기도 했다. 단돈 800달러를 들고 이민한 김 씨의 스토리와 딸을 위한 헌신적인 뒷바라지는 미국 언론에 자주 소개됐다.
김 씨는 그러나 클로이 김이 스무 살이 되던 무렵부터는 딸의 일정과 결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24시간 붙어 다니면서 동지애까지 생겼지만 아버지한테 너무 의지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가족 동반 초청 행사도 항상 정중히 거절하고 딸만 보낸다.
평창 올림픽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이후 유명세에 방황할 때도 김 씨 부부는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경기 하는 거 보면 쉽게 하는 것 같지만 너무 위험한 종목이다 보니 부모는 늘 가슴이 철렁하는 거죠. 운동을 그만둘 생각도 있다고 하기에 정말로 운동 접고 학교(프린스턴대) 생활만 충실히 하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결국 다시 타더라고요.”
중간에 거의 2년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클로이 김은 평창 때처럼 마지막 시기에 나서기도 전에 이미 금메달을 확정했다. 그는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첫 금메달 뒤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 메달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 메달은 클로이 김이 “어딜 가든 내 마음속에 함께하는 두 분”이라고 표현한 부모님이 금은보화처럼 잘 간직하고 있다.
김 씨는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제 정말 운동을 그만하면 좋겠다”고 했다. “발 부러지고 어깨 뼈 다치고 인대는 거의 끊어지고…. 안 다친 곳이 없고 응급실도 수도 없이 실려갔다”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러면서도 “가을에 학교로 돌아갈지는 전적으로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다음 달 한국 여행을 앞두고 한창 계획을 짜고 있다는 부부는 딸이 함께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재밌게 놀고 돌아올 것이라고 선선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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