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은 강원도 최북단, 다른 한 곳은 본토 최남단이다. 지리적으로는 극과 극인 두 지역이 '고성'이라는 이름을 나눠 쓴다. 그 중에서 여행객들이 흔히 떠올리는 곳은 동해를 품은 강원도 고성이다. 경남 고성은 그에 비하면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다. 서울에서 지리적으로도 멀거니와 통영, 남해 같은 남해안 여행지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어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이지만,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여행이 어려운 시기에는 이런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어지러운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히 이 땅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는 경남 고성 여행을 다녀왔다.
고성여행은 언제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아주 오래 전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다. 공룡이 살던 중생대부터 족히 1500년도 넘은 조상들의 무덤인 소가야 고분, 그리고 남해 한려해상의 빼어난 풍경을 담은 천년고찰까지, 역사책에서나 접해 온 한반도의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이다. 역사 순으로 고성의 대표 여행지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오랜 세월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곳들이라 계절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찾아도 되는 곳들이다.
세계 3대 공룡 화석지…타임캡슐 타고 공룡이 살던 시대로
고성여행은 타임캡슐을 타고 한반도에 공룡이 살던 까마득한 옛날, 중생대부터 시작된다. 넉넉잡아 2억5200만년 전 중생대 쥬라기와 백악기라고 불리는 시기 이 땅의 주인은 공룡이었다. 특히, 고성은 한반도에서도 육식, 초식, 하늘을 나는 익룡까지 다양한 공룡이 어우러져 살던 공룡 천국이었다. 몇 차례 지각 변동이 있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온화한 기후와 천혜의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고성은 사람 뿐만 아니라 공룡들에게도 살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지금은 사라진 공룡의 흔적을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곳도 고성에 있다. 국내 최초로 1982년 하이면 바닷가에서 첫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5000여점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곳곳에 공룡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상족암군립공원은 공룡 발자국 2000여개가 무더기로 나온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다. 최상위 포식자이던 오비랩터, 프로토케라톱스 같은 육식공룡부터 클라멜리사우루스 같은 초대형 초식공룡까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수십 종에 달한다.
탐방은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공룡길'을 따라간다. 출발은 맥전포마을. 바다 위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 병풍바위 전망대와 제전항을 들러 덕명항까지 무려 3.5㎞에 달한다. 거대한 공룡의 보폭을 생각하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데크길 중간쯤 가면 해안절벽 사이로 새까만 파식대가 수면 위로 아슬아슬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국내 첫 공룡 발자국 화석지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 산지'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파식대에는 다양한 종의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 위를 밟고 바다로 나가면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절벽 중 유독 눈에 띄는 곳이 바로 상족암이다. 상족암(床足巖)은 수만 년 간 해풍과 파도에 깎여나간 해식애로 수직절벽이 밥상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측면에서 바라본 상족암은 마치 시루떡을 겹겹이 쌓은 것처럼 층을 이뤄 퇴적암의 신비로움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썰물 때 맞춰가면 밥상다리 안쪽 암벽에 난 해식동굴로 들어갈 수 있다. 어두컴컴할 것만 같은 동굴 내부는 의외로 포근한 느낌이다.
상족암 동굴 앞은 여름이면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긴 줄이 늘어선다. 이끼로 가득한 동굴 표면에 햇살이 비치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MZ세대 명소로 떠올랐다. 잠시 눈을 감고 동굴 안에 가득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여유는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상족암 방문객들은 대게 공룡길 전 구간을 걷기보단 중간지점인 상족암 모래해변 앞 주차장에서 출발해 상족암까지만 왕복한다. 바다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걸어도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에머랄드빛 남해 조망 하나만 해도 여행지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상족암 바로 위 언덕에 자리한 고성공룡박물관은 공룡이 남긴 흔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야외에 세계 최대 높이(24m)의 공룡탑과 20여종의 실물 크기 공룡 모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실내 관람이 아니더라도 여기까지 왔다면 꼭 한번 들러가라고 말하는 이유는 박물관에서 내려다보는 조망 때문이다. 박물관 3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상족암 뿐만 아니라 한려해상의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화성에 온 듯한 착각…'고분계의 아이돌' 내산리 고분군
다음은 고성에 사람이 집단 거주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오랜 흔적인 고분이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고성은 주변을 압도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던 고도(古都)이자 유구한 시간 번성했던 풍요의 땅이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가야6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가야의 중심지인 고성은 주변 국가와의 활발한 해상교역으로 통영, 거제, 사천, 남해 등을 아우르는 세력권의 핵심으로 떠올라 독자적인 문화를 꽃 피웠다.
그 대표적인 흔적이 고분군이다. 고성 읍내 한복판에 자리한 송학동 고분군은 소가야 최상위 지배계층의 무덤이다. 해상왕국 소가야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송학동 고분군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 등과 함께 가야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곳은 송학동 고분군이 아니라 여행객들에게 생소한 내산리 고분군이다. 고성읍과 멀찍이 떨어진 동해면 내산리 고분군은 송학동과 마찬가지로 소가야의 또 다른 최상위 지배계층의 무덤이다. 내산리 고분군 역시 1963년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과 나란히 사적(제120호)으로 지정됐지만 복원이 더디게 이루어지면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최근 내산리 고분군이 복원을 마쳤다. 사실 송학동 고분군이나 경주 황남대총이나 모두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흔적도 없이 깎여나간 봉분을 후대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여행객들에게 중요한 건 역사적 의미보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다. 고분의 매력은 봉분의 우아한 곡선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다. 그런 면에서 내산리 고분군은 다른 고분군과 달리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대형 고분 7기로 이루어진 송학동 고분군이 웅장함을 자랑한다면 내산리 고분군은 대형부터 중소형까지 다양한 크기의 고분 65기가 두 개의 야산에 걸쳐 넓게 펼쳐진 대규모 고분군이다. 규모로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나 함안 말이산 고분군과 맞먹는 수준이다. 넓은 잔디밭에 올록볼록 솟아 오른 다양한 크기의 고분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달이나 화성 표면의 분화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산리 고분군의 특징은 위로 갈수록 봉분이 크다는 점이다. 아래쪽 봉분일수록 초기에 만들어진 무덤이라고 한다. 내산리 고분군의 또 다른 매력은 다른 고분에 비해 이동이 자유롭다는데 있다. 봉분 주변으로 구석구석 걸어 다니면서 고분을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다. 다만,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은 송학동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과 함께 고성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가야 고분군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송학동 고분군과 박물관에 들른 뒤 내산리 고분군을 찾는 게 순서다.
내산리 고분군 인근 검포마을 서어나무숲도 볼거리다. 마을 앞 하천변에 조성된 숲은 조선 후기 마을로 들어온 김해 김씨와 밀양 손씨가 조성한 300년 된 방풍림이다. 최초 서어나무 100그루와 팽나무 2그루를 심었는데, 현재 30여 그루가 남아 마을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300년 넘은 고목 사이로 오솔길과 정자가 놓여 있고, 여행객들을 위한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평소 여행객들이 찾지 않는 곳이라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다.
검포마을 주변 ‘둠벙’은 고성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볼거리다. 주로 서해안이나 남해안에서 볼 수 있는 둠벙은 물이 부족한 바다와 인접한 농촌지역에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지하수나 빗물을 가두어 두는 일종의 웅덩이다. 현재 고성지역에만 440여개의 둠벙이 남아 있다. 고성 둠벙은 국가중요농업유산에 이어 2020년 세계관계시설물유산으로 등재됐다. 최근 고성군에서 둠벙 탐방로를 조성하는 등 둠벙을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내산리 고분군 인근 논에 가면 크고 작은 여러 둠벙을 만나볼 수 있다. 둠벙 주변으로 심어진 덩굴식물인 마삭줄이나 억새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사찰이 품은 남해 최고의 절경, 문수암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
상리면 무선리 문수암은 사찰 자체로 유명하기보단 한려수도 다도해 조망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공룡 발자국이나 고분군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문수암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천년고찰이다. 무이산(해발 545m) 기슭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자리한 사찰은 한려수도에 떠 있는 아기자기한 섬을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지다. 사찰 앞까지 연결된 임도를 타고 올라가면 산 정상에 두 개의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한쪽은 문수암이고 다른 한쪽은 약사여래를 모신 보현암 약사전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자리한 문수암에서 보현암 약사전 쪽으로 내려다보면 산 능선 너머로 동양 최대의 금불좌상과 함께 남해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문수암의 창건 설화는 다도해 풍경을 본 다음에야 눈에 들어온다. 문수암은 신라 신문왕 8년(688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꿈속에 나타난 고승이 '걸인을 따라 무이산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실제 걸인을 따라간 곳이 문수암 터다. 걸인은 바위 틈으로 사라져버렸는데, 이곳에 자연 문수보살상이 새겨져 문수단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문수전 법당 뒤 암벽 아래 흰색 페인트로 칠한 발자국 모양이 있는데, 여기서 서서 문수단 바위 틈을 올려다보면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