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여수국가산업단지 중견 기업 A 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금속 합성 작업 시설에서 발생한 전기 과열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업력이 20년 가까이 되고 수출 성과가 뛰어난 기업이라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개선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일주일도 안 돼 같은 시설에서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다시 일주일 뒤 같은 곳에서 세 번째 화재 사고가 발생했지만 사측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지난해 1월에는 국내 대표 정유 분야 대기업인 B 사의 1공장에서 순간적인 발화로 작업자 두 명이 부상을 입었다. 진흙 충진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작업자의 부주의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5일 뒤 다시 같은 공장에서 수소 노출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 당국 등에서 조사한 결과 시설이 미비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11일 폭발 사고로 8명의 사상자를 낸 여수산단의 안전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A 사의 사례처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고가 한 달도 안 돼 3번이나 반복될 정도다. 여수산단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석유화학 기업이 밀집해 있다. 산단의 안전 관리 체계에 대한 점검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7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폭발 사고로 8명의 사상자를 낸 여천NCC는 고용부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사고를 수사 중인 고용부와 경찰은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현장 책임자를 입건했다. 사고가 발생한 여수산단은 지난해 12월 폭발 사고로 근로자 3명이 목숨을 잃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2013년에는 폭발 사고로 근로자 6명이 숨졌다.
반복되는 인명 사고는 부주의와 시설 점검 미흡이라는 복합적인 원인 때문이다. 서울경제가 여수시청이 작성한 2017~2021년 여수산단 사고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주의(작업자 부주의 등)는 28건, 시설 관리 소홀(시설 미비 등)은 27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설을 제대로 갖추면 막을 수 있는 시설 관리 소홀은 2017년과 2021년 각각 7건으로 나타났다.
인명 사고는 산단의 고질적인 문제인 노후 시설 문제와 직결된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6년간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관리하는 산단에서 126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123건은 20년 이상된 노후 산단 사고다. 사상자 230명 중 226명도 20년 이상 노후 산단에서 일하는 근로자였다. 1979년 완성된 여수산단도 마찬가지다. 최근 6년간 17건의 산업재해가 일어났고 사고로 25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여수산단 입주 기업의 업종을 보면 2020년 기준 석유화학이 96%에 달한다. 석유화학 공장은 작은 화재도 대형 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안전 감독이 요구된다. 여수시청 관계자는 “우리처럼 시청에 산단안전팀을 꾸려 산단을 관리하는 곳은 전국에 10곳도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용부 근로감독관과 산업단지공단 담당자 모두 산단 관리가 어렵다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는 여수산단 여천NCC 폭발 사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고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여수산단에서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사고로 3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며 “노후 산단의 정기적인 유지 보수와 시설 관리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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