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르는 가운데 청와대와 윤 후보 간 갈등 관계가 한층 더 주목받고 있다.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가 대선판에 시한폭탄처럼 작용하는 분위기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이슈까지 윤 후보가 선점하면서 열세인 이 후보에 더 이상의 반전 요소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 10만명 돌파로 겹악재를 맞으면서 현 정부 참모들의 지방선거 불출마도 잇따랐다. 여기에 내달 1일 3·1절을 맞아 문 대통령이 어떤 대일 메시지를 낼 지도 관심사가 됐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한일관계가 여전히 교착 상태인 데다 사도광산 논란까지 겹친 만큼 문 대통령이 완전한 유화 메시지를 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일본과의 대립 관계 설정 여부가 진영결집에 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靑 “文대통령, 윤석열 '적폐수사 사과' 지켜보고 있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5일,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윤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을 잊지 않고 있음을 재차 알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의 적폐수사 발언과 관련한 청와대 내부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이 하실 말씀은 지난 10일 하셨고 (지금은 윤 후보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지켜보는 주체가 문 대통령인가, 청와대인가’라는 추가 질문에는 “둘 다 해당된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지난 9일과 10일 윤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에 잇따라 격앙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10일 직접 메모지에 반박 글을 써 참모들에게 전달하고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차기 대선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현직 대통령이 제1 야당 후보에게 내놓은 반응으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관계자는 ‘윤 후보의 검찰 관련 공약이 현 정부의 검찰개혁을 후퇴시킬 것’이라는 지적에는 “대선 후보의 주장에 일일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윤 후보는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총장에게 독자적 예산편성권을 부여하는 등의 사법 개혁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윤 후보는 당시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같은 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참모회의 중 “정부는 공정하고 안전한 선거관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날 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 격리·확진자의 투표 참여를 위한 시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일부법률개정안이 공포된 것과 관련해 “다행”이라며 “정부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확진자와 격리자가 대폭 늘어나는 상황에서 유권자 모두의 투표권이 보장되고 또 최대한 안전하게 대선이 치러지도록 시행에 빈틈이 없도록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총선 이후 외국 정상과 만나면 선거를 안전하게 치른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는 말도 했다고 밝혔다.
尹 ‘파시스트’ ‘히틀러’ 발언에…靑 ‘부글부글’
윤 후보와 청와대 간 감정싸움은 적폐 수사 발언에 그치지 않았다. 윤 후보는 17일 경기 안성에서 유세를 하며 적폐수사와 관련한 자신의 발언을 민주당이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것에 반박했다. 그가 “정치보복을 누가 제일 잘했느냐”고 묻자 현장의 지지자들은 “문재인”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윤 후보는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들이 뒤집어씌우는 것은 세계 최고다”라며 “파시스트들,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수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개입 논란을 의식해 한 동안 숨 고르기를 하던 청와대도 이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같은 날 여러 언론과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정치보복을 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측과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을 수사한 ‘윤석열 검찰’이 정치보복을 실행했다는 것인가”라며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공정하고 안전한 선거를 치르도록 요청하며 코로나 극복과 민생경제 회복에 사력을 다하는데, 윤 후보는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며 “문 대통령이 파시스트, 공산주의자라면 대한민국은 무엇이고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란 말인가. 아무리 선거라지만 대통령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 명예상임선대본부장은 18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윤 후보 발언을 거론하며 “웃음밖에 안 나온다”고 비꼬았다 추 본부장은 “그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적폐를 어떻게 그냥 칼자루를 쥐고 두고 봤느냐”며 “본인이 항명을 한다든가 사표를 내지 않고 왜 그 안에서 일을 했느냐. 파시스트의 하수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미경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같은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청와대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된다”며 “문재인 정권 1호 공약이 적폐청산이었잖느냐. 적폐청산을 했으면 똑같은 잣대로 문재인 정권을 향해서도 해야 되는 게, 윤 후보가 하려고 하면 다 막았다”고 반박했다.
확진자 10만 시대에…참모들, 지방선거 포기로 대선 ‘올인’
대선 시계가 불투명해지면서 문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의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도 잇따랐다. 6월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번 대선 결과와 연동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선거 관리와 방역 대응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10만명을 넘어선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세는 선거판에서도 중대한 변수다.
정치권과 관가에 따르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는 지난 15일 대통령 비서실에 지방선거 불출마 결심 사실을 알렸다. 유 부총리는 당초 경기도지사 출마를 오랫동안 준비했던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그가 공직 사퇴 시한인 3월3일 전에 사표를 제출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오미크론 변이의 영향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사퇴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이다. 특히 각급 학교 개학 준비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자기 선거를 위해 물러날 경우 여론이 외려 악화될 수 있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유 부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불출마 입장을 격려했다.
유 부총리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새 학기 학교 방역 추가 지원 방안 브리핑을 열고 “교육부 장관으로서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학교를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판단했다”며 불출마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는 “온전한 학교의 일상회복을 위해 교육부 장관으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며 “그리고 문재인 정부 국무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 대통령과 함께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2018년 10월 2일 취임한 유 부총리는 오는 24일을 기점으로 역대 교육부 장관 중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우게 됐다.
유 부총리뿐만 아니라 경기도지사 출마를 고려했던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선거 관리 등을 이유로 출마를 포기했다. 충남도지사, 서울시장,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거론되던 청와대의 박수현 국민소통수석, 이철희 정무수석, 박경미 대변인도 불출마 쪽으로 결심이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원도지사 차출설이 나돌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일찌감치 불출마 입장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외교장관은 초면부터 ‘충돌’…‘수출규제 극복’ 연일 강조
청와대가 윤 후보와 각을 세우는 가운데 한일 외교장관은 첫 만남부터 과거사 문제로 충돌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의용 장관은 12일(현지시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만나 40여분간 회담을 가졌다. 두 사람의 대면 회담은 지난해 11월 하야시 장관 취임 후 처음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 회의에서 잠깐 조우한 적은 있지만 회담은 갖지 않았다. 전화 통화조차 취임 3개월 만인 이달 3일 겨우 이뤄졌다.
대면 만남에서도 두 나라 간 갈등은 그대로 이어졌다. 정 장관은 “올바른 역사인식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이어 “이러한 역사인식은 과거 한일간 대표적 회담·성명·선언에서도 공유돼 온 것”이라며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위해 외교당국 간 협의를 가속화하자”고 제안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재차 강조하고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일본 정부의 전향적 자세를 우선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정 장관은 그러면서 최근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결정에도 항의했다. 정 장관은 “2015년 ‘일본 근대산업시설’ 등재 시 일본 스스로 약속한 후속조치부터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장관은 또 “우리의 특정 산업을 겨냥해 취해진 일본의 수출규제가 현재 한미일 간 세계 공급망 안정 강화협의와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하야시 장관도 일본 정부의 입장만 설명했다. 두 나라의 입장이 또 다시 평행선을 달린 셈이다.
문 대통령도 일본 수출규제 극복을 현 정부 성과로 연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4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첫 주재 때 “우리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반도체 소재, 요소수 같은 범용품 등 공급망의 위기를 겪어 왔다”며 “그러나 우리 경제는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강점을 갖고 있어서 지금까지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며 오히려 기회로 바꿔 왔다”고 평가했다. 청와대는 17일 문 대통령, 외국인투자 기업인 간담회 개최 사실을 알리면서도 일본 수출 규제를 거론하며 ‘MEMC코리아 실리콘 웨이퍼 제2공장 준공식’에서 외국기업의 활발한 소재·부품·장비 투자를 요청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靑 대응, ‘진영결집’ 효과뿐…이재명, 단일화 이슈에서도 밀려
문 대통령과 윤 후보간 기 싸움은 적어도 진보진영 결집에 일정 수준의 효과는 거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 발언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이 다소 올랐다는 결과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당분간 선거개입 의혹은 최소화하면서 윤 후보의 공격에 대응, 이 후보를 측면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대일 수출규제 성과 홍보, 3·1절 메시지 등을 통해 대선 직전까지 대일전략을 부각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윤 후보의 지지율은 이보다 더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막판으로 가면서 양 진영 결집에 청와대의 존재감이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더욱이 안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 카드까지 앞서가는 야권이 쥐면서 청와대와 이 후보가 궁지로 몰린 양상이 됐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사생결단 식 ‘단일화’도 아니면서, ‘국민통합정부’ ‘비례대표제 확대·위성정당 금지’ ‘연대’ 같은 것을 외치는 이 후보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 여론이 계속 과반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노무현·정몽준 식 단일화 추진이 시급한 쪽은 애초부터 이 후보 측이었다.
결국 정권 재창출의 칼자루를 쥔 건 이 후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가 진영결집에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선거를 좌우할 중도층을 확보하는 것은 후보 본인의 몫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 후보의 어퍼컷이 정치 보복 의지를 담은 동작이라는 민주당의 비판에 대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밝은 눈으로 보면 좀 좋겠다”고 비판했다.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기자간담회에서 “안 후보가 단일화 이슈를 던진 이후 그쪽으로 국민 관심사가 모이면서 지지율 격차가 벌어졌다”며 “당 내에서는 4~5%포인트 격차가 벌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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