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20일 폐막식을 끝으로 17일간의 열전을 마감하면서 올림픽의 ‘동북아 시리즈’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18 평창 동계, 2021 도쿄 하계 등 한중일 3국 올림픽은 이제 2024 파리 하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2028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으로 바통을 넘긴다. 폐막식은 약 100분간 간소하게 진행됐으며 차기 개최지인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는 ‘서로 다르지만 함께(Duality, Together)’를 주제로 한 쇼로 4년 뒤 만남을 약속했다.
서방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과 개막식 ‘한복 공정’ 논란 등 어수선한 분위기로 출발한 베이징 올림픽은 판정 논란과 도핑 충격까지 더해 시끄러웠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이 올림픽 개최 비용으로 쓴 돈은 최소 160억 달러(약 19조 원). 애초 계획의 5배 이상을 써가면서 역효과만 낸 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도 암을 이긴 캐나다의 스노보더(슬로프스타일 금메달 맥스 패럿), 교통사고로 당한 뇌 손상에도 굴하지 않은 미국 스키 선수(프리스타일 빅에어 은메달 콜비 스티븐슨), 동료의 양보로 출전해 흑인 여성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을 딴 미국 여성(에린 잭슨) 등 반짝이는 감동 스토리가 대회를 빛냈다. 베이징 올림픽을 키워드로 돌아봤다.
◇스캔들=한중 양국의 네티즌들은 대회 내내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손가락 전쟁’을 벌였다. 한복 논란에 분노한 한국 측을 중국 측이 비방하면서 싸움이 시작됐고 쇼트트랙에서 어이없는 판정에 한국 선수가 실격하는 사이 중국 선수가 어부지리로 올라가는 일까지 벌어져 싸움은 더 커졌다.
잇따른 판정 스캔들에 한국 선수단은 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를 고려하는 강수까지 꺼내 들었다. 다행히 이후로는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 생기지 않았고 황당한 판정의 희생양 황대헌(강원도청)도 남자 1500m에서 ‘분노의 질주’로 금메달을 따냈다.
‘발리예바 파문’은 핵폭탄급이었다. 러시아 출신 카밀라 발리예바는 지난해 말 받은 도핑 테스트의 결과가 올림픽 기간 중 양성으로 나왔는데도 피겨 여자 싱글 경기에 출전했다. 이를 막지 않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에 비난이 쏟아졌다. 코치와 팀닥터 등이 16세 소녀 발리예바에게 약물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지만 크렘린궁이 발리예바와 코치를 옹호하는 입장을 내비치는 등 러시아 측 입장은 예상보다 더 강경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을 통해 “올림픽은 오랜 기간 논쟁으로 가득 차왔지만 이번은 또 다른 최악을 기록했다”며 베이징 올림픽이 “스캔들 올림픽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할많하않=독일의 ‘루지 여제’ 나탈리 가이젠베르거는 대회 기간에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며 올림픽 불참까지도 생각했던 그는 금메달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독일에 돌아가면 얘기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가이젠베르거는 귀국 후 “다시는 중국에 가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올림픽 개최권을 준 IOC를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웨덴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닐스 판데르풀도 귀국 뒤 “중국처럼 인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나라에 올림픽을 넘겨준 IOC는 극도로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대회 기간에 선수들의 의사 표현을 철저히 가로막았다. 무슨 말을 할지 사전에 확인하는 절차까지 있었다. WP는 “IOC는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거나 민주국가인 개최국을 찾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초격차=산업계에 익숙한 키워드를 쇼트트랙의 최민정(성남시청)이 소환했다. 라이벌 쉬자너 스휠팅(네덜란드)에게 가려 은메달 2개를 따고 있던 최민정은 마지막 종목인 여자 1500m에서 스휠팅을 3위로 밀어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웃코스 추월이라는 확실한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4위에서 단숨에 1위로 튕겨나갔고 2위 그룹을 멀찍이 따돌린 채 독주했다.
◇고인 물=썩게 마련인 고인 물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지만 요즘 네티즌들은 긍정적 의미로도 쓴다. 내공이 깊어 존경할 만하다는 의미를 담는다. 한국은 금 2, 은 5, 동메달 2개로 종합 14위에 오르면서 ‘금 1~2개, 종합 15위’ 목표를 달성했는데 이른바 고인 물들이 사실상 다 했다. 이번 대회 개인 종목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은 전부 4년 전 평창 대회 메달리스트들이다. 빛나는 활약을 펼친 선수들은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바꿔 말하면 세대교체가 더뎠다는 얘기다.
한국은 1992 알베르빌 대회(금 2·은 1·동 1) 이후 최소 금메달 타이라는 씁쓸한 기록을 썼다. 안방 올림픽에 걸맞은 각계 지원에 평창에서는 설상과 썰매에서도 메달이 터졌지만 4년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만 메달이 나왔다. 평창의 영광을 전설에 묻어두지 않으려면 정부와 체육 단체 간의 엇박자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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