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사전투표의 열기는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계한 사전투표 첫날인 4일 투표율은 17.5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뒤 추세를 이어 이틀날 투표까지 합산 투표율은 36.93%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해 상당수 유권자가 오는 9일 본투표보다 사람들이 덜 몰리는 사전투표를 선택한 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사전투표 직전날 밤 전격적으로 성사된 야권 후보 단일화로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서고,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는 점도 사전투표율 상승 요인으로 분석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5일 오후 6시 기준 전국 유권자 4419만 7692명 중 1632만 3602 명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 36.93%를 나타냈다. 종전의 최고 사전투표율이었던 2020년 총선 26.69%보다 10.24%포인트 높았고, 2017년 대선 당시 사전투표율(26.06%)보다 10.87%포인트가 높았다. 강우창 고려대 교수는 “비호감 대선이라지만 투표 효능감이 높아진 유권자들의 대선 관심도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현저히 달라질 국정 운영에 지지층뿐만 아니라 부동층 유권자들도 투표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익숙해진 사전투표에 초박빙 대선 ‘한표’의 효능감 증대
투표열기는 전날부터 조짐을 보였다. 오미크론 확산세로 이날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26만명을 넘어섰지만, 19대 대선 당시 사전투표 첫날 투표율(11.7%)을 마감 세 시간 전인 오후 3시(12.31%)에 일찌감치 돌파했다. 코로나 발생 초기(2020년 4월) 치른 지난 21대 총선 첫날 사전투표율은 12.14%였다.
이처럼 초반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투표율 상승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은 다양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사전투표에 익숙해진 결과 사전투표가 반복될 수록 투표율이 상승하고 있다”며 “일부 지역의 투표율 차이를 두고서도 큰 의미부여를 할 만큼의 투표율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의 지적은 이번 사전투표에서 호남지역의 투표율이 높자 해당 지역이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높다는 점에서 여당 지지층 결집이라는 해석을 반박한 셈이다. 실제 전남은 51.45%로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전북과 광주가 각각 48.63%와 48.27%로 타지역 투표율을 월등히 상회했다. 반대로 경기도가 33.65%로 가장 낮았고 대구(33.91%)와 인천(34.09%) 순으로 낮았다. 서울은 37.23%로 전국 평균보다 약간 높았다. 신 교수는 “광주를 비롯한 호남지역은 매번 사전투표 뿐만 아니라 모든 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은 지역”이라며 “여당 지지층 결집이라고 분석하기에는 호남 바닥민심의 변화를 간과한 분석”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한편 투표 효능감에서 사전투표율 상승 원인을 찾는 분석도 있었다. 강우창 교수는 “탄핵 이후 국민의 정치의식이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초박빙 대선에서 한 표의 행사만으로도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과 효능감 등이 동시에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즉 탄핵 등 정치적 경험이 유권자들에 누적된 데다가 비호감·초박빙 대선 상황에서 한 표만으로도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투표 효능감이 높아진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사전투표 열기가 최종 투표율 상승으로 반드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 교수는 “대선과 총선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 없지만 2020년 총선에서 사전투표율이 최대를 기록했더라도 본투표가 그 직전의 2017년 대선 투표율보다는 낮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코로나19 확산 등 다른 돌발변수가 나올 경우 최종 투표율이 14대 이후 평균 대선 투표율인 74.99%를 넘길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여야, 사전투표 총력전…투표열기 자극
무엇보다 여야 모두 사전투표에 총력전을 벌인 것도 투표율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사전투표는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과거 공식을 이어가려는 듯 당 전체가 사전투표 독려에 나섰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사전 투표 첫날인 전날 서울 중구 소공동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마친 뒤 “촛불을 들고 광화문과 시청 앞에 모였던 수많은 국민들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페이스북엔 투표 인증샷을 올리면서 “사전투표했다. 투표하면 이긴다”라고도 적었다. 같은날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은 “명분 없는 윤석열·안철수(후보)의 야합에 역풍이 불어친다”며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며 투표를 권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단일화를 적극 홍보하면서 효과 극대화에 나섰다. 권영세 국민의힘 총괄선대본부장은 “윤 후보와 안 후보가 통큰 단일화를 이뤄냈다”며 “투표해야 이긴다. 사전투표하면 더 크게 이긴다”고 강조했다. 첫날 사전투표를 마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페이스북에 “사전투표 첫날부터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사전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해달라”고 적었다. 경북 경주로 이동해 유세를 펼치던 중엔 “저도 오늘 부산에서 사전투표를 했다. 부정 의혹을 걱정하고 계시는 걸 알지만, 이번엔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투표를 독려했다.
한편 이날 최종 투표율 집계가 늦어지자 이 후보는 "오늘 코로나에 확진되신 분들이 투표하는 과정에 많은 불편을 겪으셨다고 한다. 참정권 보장이 최우선"이라며 "선관위와 당국은 9일 본투표에서는 확진자들의 불편과 혼선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격앙된 분위기였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현장에서 항의가 빗발쳤다"며 "대통령 선거를 허술하고 부실하게 준비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안이하고 무능한 행정이 불러온 참사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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