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 5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 보고에서 ‘공동부유’를 명목으로 한 분배에 쉼표를 찍더라도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홍색 규제’로 불리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줄이고 감세, 연구개발(R&D) 비용 공제 확대 등 친시장적 정책을 강화해 안정적 경제 운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중국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로 제시한 ‘5.5% 내외’는 1991년 이후 가장 낮지만 시장 전망치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12월 5.2%를 전망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1월 기존 5.6%에서 4.8%로 내렸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4.3%까지 눈높이를 낮추기도 했다. 당초 ‘5% 이상’이나 ‘5~5.5%’가 목표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기준점을 최상단인 5.5%로 잡은 것은 그만큼 하방 압력을 버텨내고 ‘안정 속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통신은 “경제 전문가들의 전망치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설정한 것은 더 많은 경기 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중국 관영 영자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올해 ‘더 많은 위험과 도전’에 대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2위 경제의 회복력에 대한 정책 입안자들의 확신을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커창 중국 총리 역시 “중국은 성장할 때마다 항상 도전에 직면해왔다”며 “중국 인민은 어떤 장애물이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비전·힘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정적 성장 목표를 위해 중국 정부는 감세, 부동산 규제 완화, 투자 비용에 대한 공제 확대 등 시장경제로의 ‘우클릭’을 시사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강조해온 공동부유는 올해 속도 조절이 예상된다. 왕군 중위안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통신에 “경제가 상대적으로 큰 압력에 직면했을 때는 과감한 개혁 조치를 밀어붙이기 좋은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리 총리는 업무 보고에서 ‘감세’를 일곱 번이나 언급했다. 세금 환급을 포함한 감세 규모는 올해 2조 5000억 위안(약 482조 원)으로 예고했다. 지난해에는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고 실제 감세 규모가 1조 1000억 위안인 것과 비교하면 예상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3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경기 부양도 나설 방침이다. 리 총리는 “거래용 주택 시장이 구매자의 합리적 주거 수요를 만족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금리 인하, 대출 완화 등의 대책으로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고 디지털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기업 지원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과학기술형 중소기업의 R&D 비용 공제 한도를 75%에서 100%로 높이고 기초연구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 설비 기구 감가상각비 개선, 정보기술(IT) 기업 소득세 우대 등의 정책도 제시했다.
리 총리는 올해 1100만 개 이상의 신규 도시 일자리를 창출하고 도시 실업률을 5.5% 이내로 억제하겠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3% 내외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낮은 CPI, 내수 침체 등을 감안해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예상됐으나 올해 재정 적자 목표는 GDP의 2.8%로 전년 대비 0.4%포인트 낮아졌다. 중국의 재정 적자 규모는 지방정부 재정에 좌우되는데 중앙정부의 예산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경기 부양을 이끌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안정적 성장의 목표를 제시했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지난해에는 성장률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올해는 더 낮은 목표치에도 이를 이루는 데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현재까지 중국의 경제 신호는 지난해 말보다 약해졌으며 부동산과 내수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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