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고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 27일 시행되고 한 달여 지났다. 법이 안착된다면 사망 사고를 줄여 우리나라가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법 시행 초기인데다 첫 판례도 나오기 전이라 조문 해석이 모호하고 기업들이 적응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서울경제가 법 시행 후 적용 사례를 중심으로 쟁점 등을 소개한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이달 2일까지 법 적용 사고는 11건이다. 사고 빈도가 높은 건설 현장의 근로자 추락 사고를 비롯해 채석장 토사 붕괴, 화학 공장 폭발 사고 등이 발생했다. 세척제를 사용하다가 급성중독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 사고도 일어났다.
11건의 사고 가운데 눈여겨볼 점은 중대재해법을 수사 중인 고용노동부가 법 위반 혐의로 누구를 입건했는지다. 모두 해당 기업 대표이사나 현장책임자(건설업의 경우)다. 아직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입건된 사례는 없다. CSO를 선임하면 중대재해법 처벌을 대표가 피할 수 있는지는 법 시행 전부터 가장 큰 논란인 동시에 기업들의 관심사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결과다.
고용부의 수사 과정은 중대재해법의 일관된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7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화진 고용부 차관은 진행자로부터 “기업이 가령 바지 사장을 세우거나 전무·상무가 덤터기를 쓰고 회장님 아들(오너 일가)은 그대로 가는(처벌을 피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박 차관은 “그게 가능하려면 위임하는 이에게 전권을 줘야 한다”며 “(중대재해법은) 내세운 바지 사장이 아무런 권한이 없다면 책임을 못 묻고 원래 경영 책임자를 찾아 처벌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논리가 중대재해법 시행 후 실제 수사 과정에서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고용부는 중대재해법 해설서에서도 경영 책임자에 대해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라고 규정했다. 경영 책임자는 예산·인력·조직 등 사업 경영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져야 한다. 안전 부분만 담당하는 CSO와 명확히 선을 그었다.
고용부는 ‘바지 사장’에게 전권이 없다는 점을 가려내는 게 쉽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동안 고용부의 안전 감독은 서류상 대표가 아니라 실제 사고 책임인 안전관리 책임자를 찾아 처벌해왔기 때문이다. 사고자의 동료 등 현장 근로자의 증언을 모으는 게 중대재해법 수사의 핵심인 이유다.
고용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어떻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며 “중대재해법은 사고 예방을 위해 기업이 무엇을 했는지를 살펴보고 제대로 안 했다면 처벌받을 수 있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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