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공약은 ‘반(反)문재인’의 깃발을 들고 정치를 선언한 그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았다. 윤 후보의 공약은 문재인 정부가 정책적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했거나 실패했다는 평가가 우세한 정책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데 중점을 뒀다.
윤 후보는 총 266조 원이 드는 공약을 내세웠다. 가장 강조하는 공약은 문재인 정부의 방역 조치로 피해가 집중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실질적 보상이다. 구체적으로 ‘50조 원’을 내세웠다. 지난 2020년 8월 시작된 정부의 인원·영업시간 규제를 소상공인들은 그동안 묵묵히 따랐다. 하지만 이달 7일 기준 전 국민의 86.5%가 백신을 2차까지 접종했는데도 코로나19 확진자는 일일 20만 명을 넘을 정도로 폭증했다.
윤 후보는 이를 방역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집권 즉시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를 설치해 소상공인에게 50조 원의 현금·금융 지원에 나선다. 또 민관 합동으로 5조 원의 특별 기금을 조성해 자영업 재건을 돕기로 했다. 새 행정부의 운전대를 잡는 대로 망가진 민생부터 복구하겠다는 게 윤 후보가 가장 강조하는 공약이다.
윤 후보는 동시에 문재인 정부 들어 비대해진 정부, 공공 부문 주도의 경제를 시장 중심 체제로 유턴할 방침이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수요와 공급’, 즉 시장의 원리에 맞춰 대전환한다.
우선 임기 5년간 전국에 민간을 중심으로 250만 가구의 신규 주택을 공급한다. 문재인 정부는 소위 ‘세금 폭탄’과 대출 규제로 수도권 집 가격을 눌렀지만 시장의 역풍을 맞아 ‘미친 집값’을 불렀다. 윤 후보는 수도권에만 130만 가구의 공급 물량을 퍼붓고 재건축·재개발을 완화하는 등 공급으로 수요를 압도해 집값을 잡는 구상을 공약에 담았다. 또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고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취득세를 대폭 하향해 실거주자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청년들이 분양가의 20%만 내고 80%를 장기 상환하는 청년원가주택도 30만 가구를 공급한다. 꽉 묶인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80%로 완화해 실수요자들의 숨통을 틔울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과도 같던 ‘탈원전’ 정책은 폐기한다. 당장 멈춰 있는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재개한다. 동시에 현 정부 들어 보조금 횡령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태양광 비리도 파헤칠 것이라고 공언했다. 외교 안보는 강력한 한미 동맹을 앞세웠다. 이 역시 미중 간의 중재자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와는 반대다. 미국과의 강한 공조와 군사적 협력을 통해 북핵을 폐기하겠다는 구상이다. 북핵 위협이 확산되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추가 배치는 물론 미국의 전략핵무기까지 활용하는 계획도 밝혔다.
다만 재정 부담을 늘리는 정책은 집권 후에도 윤 후보에게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 후보는 당장 청년층을 겨냥해 병사 월급 200만 원을 공약했다. 약 5조 원의 재정이 더 든다. 기초연금 10만 원 인상 공약은 5년간 35조 원 이상이 소요된다. 수도권 표심을 겨냥해 내놓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연장과 3개 노선 신설 역시 역대 정권들처럼 예산 타당성 조사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하다.
무엇보다 윤 후보가 내놓은 정부 부처 개편안은 임기 시작부터 좌초될 우려도 나온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180석의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명확히 반대하는 공약이다. 윤 후보는 자신에게 칼을 직접 겨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개혁한다. 나아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정면충돌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이 법무부를 통하지 않고 기획재정부에 독자 예산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공약도 내놓았다. 검찰권을 강화하는 윤 후보의 이 같은 권력기관 개편 구상도 정치 보복을 경계하는 거대 여당의 거센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청와대 축소와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 구상 역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도 같은 공약을 내걸었지만 정부서울청사의 협소한 공간과 대체 부지 확보, 경호 문제 등이 겹치며 결국 무산됐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