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계획 숫자만 본다면 공급과잉이 되겠지만 실상은 도심에 가까울수록 부지 확보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디테일한 마스터 플랜이 없다면 실질적인 공급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도심 공급은 결국 민간 정비가 핵심입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같은 정비사업 규제를 지금부터 풀어야 5년 뒤 효과를 가시화할 수 있습니다.”(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지난해 12월부터 부동산 시장에는 관망세가 짙어졌다. 현 정부가 쏟아낸 수십 개 부동산 대책의 시장 파급 효과를 겪은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앞으로 5년간 이어질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성을 가늠하기 위해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지켜봤다. 스무 번째 대통령이 펴낼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주목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9일 서울경제가 부동산 전문가 6명에게 새 정부 부동산 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물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대답은 ‘내실 있는 공급’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주택 공급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에서의 공급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제 완화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 공급 확대 위해 ‘양도세 완화’ 즉시 시행해야=고 대표는 “시장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주려면 ‘숫자만 풍년’식의 공급 계획이 아닌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며 “또 민간 공급이 가능하도록 정비사업 규제를 풀면 대규모 예산을 들여 신도시 조성을 하지 않아도 수요에 맞는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간 정비사업 활성화 방안으로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우선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겸임교수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도 중요하지만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라며 “단순히 낡은 집을 다시 지어 살려고 하는 1주택자에게도 예외없이 부과되는 강도 높은 규제다. 현 상황에서는 재건축이 원활히 이뤄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기존 매물을 시장에 끌어내는 세제 완화에 대한 주문도 나왔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1주택자와 다주택자를 막론하고 세금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서울 집값을 잡기는 어렵다”고 세제 개선을 촉구했다.
특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박 수석위원은 “보유세 과세 기준이 되는 오는 6월 이전에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게 하기 위해서는 양도세 감면 공약에 대한 조기 시행이 필요하다”며 “시행령 개정을 통한 한시적 완화라도 곧바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도 “7월 이후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되면 전세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시급하다”며 “다주택자 한시적 양도세 중과 유예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꼽았다.
◇1주택자, 청년 등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도 손봐야=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수요 억제였다. 대출 규제 강화 등을 통해 집을 사는 수요 자체를 차단해 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 투기와는 거리가 먼 1주택자와 청년층까지 규제에 발이 묶였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에 대한 규제는 완화해 정책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생애최초로 내 집 마련을 하는 경우에도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대출을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한 규제”라며 “새 정부가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여기에 대한 소득 기준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청년층 등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주택 공급 정책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양적 공급이 아닌 질적 공급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현재 청년층을 위한 정책들은 표면적인 공급 목표치를 채우는 식으로 이뤄져 원룸 형태의 주택 공급이 많았다”며 “청년층을 1인 가구로 전제해 주택을 공급하기보다 결혼-출산-육아로 이어지는 청년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개념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민 주거 안정책에 대한 조언도 있었다. 한문도 연세대 금융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건설원가를 반영하는 5년 만기 공공임대와 달리 10년 공공임대의 경우 오른 집값이 그대로 반영된다”며 “분양 전환 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 임차인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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