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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호의 여쏙야쏙]정계은퇴 김영춘 "새로운 항해시작"

<38>“거대담론 시대 저물어…기회 넘겨줘야”

부산시장 선거 불출마와 함께 정계 은퇴 선언

재보선 뒤 지방소멸 고민 깊어…근본해결 모색

"국민 행복과 나라 발전 위해 기여할 일 찾겠다"

2018년 8월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신화월드 내 란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회 제주국제크루즈포럼' 개회식에서 김영춘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21일 전격적으로 6·1지방선거 부산시장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불출마뿐만 아니라 정계은퇴까지 못 박았습니다. 선거 당락여부를 떠나 현 여권에 부산시장에 가장 가까운 인물을 꼽으라면 김 전 장관을 빼놓을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랬던 이의 정계은퇴 소식은 갑작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나이 80이 가까워도 이쪽 저쪽을 저울질하고, 파란색 점퍼를 입었다가 돌연 빨간색 점퍼를 입는 정치권의 속성을 떠올려 보자면 당락 여부 만이 김 전 장관의 정계은퇴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김 전 장관은 정계은퇴 선언을 하며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다”고도 했습니다. 불출마나 정치를 그만 한다는 글귀보다 ‘할 일이 많다’는 그의 말에 주목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방소멸시대…주택공급 대책 백약이 무효


20대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겨울 기자는 김 전 장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김 전 장관은 이미 부산시장 불출마를 단단하게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김 전 장관은 정계은퇴 선언문과 같이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됐다”며 “나는 거기에 적합한 정치인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불출마라는 발언을 내놓고 이어 김 전 장관은 ‘지방소멸시대’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한 해 20만에 가까운 인구가 수도권에 몰려드는데 주택 공급정책을 내놓은 들 백약이 무효”라고도 했습니다. 지방은 소멸하는데 수도권은 주택부족으로 아우성 치는 현실에 근본적인 변화의 물꼬가 필요하다고 말할 때 눈빛은 빛났습니다.

2021년 1월 당시 김영춘 전 국회 사무총장이 부산 영도구의 복합문화공간인 무명일기에서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은 25년간 인구가 50만명이 감소했습니다. 부산은 총인구, 합계출산율, 고령화율, 가구구조, 지방소멸위험지수 등 주요 인구지표가 모두 부정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았고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김 전 장관은 참담했을 겁니다.

부산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인구감소 지역은 89곳에 달합니다. 전국적입니다. 수도권 일극체제를 벗어나 전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않고서는 선거때마다 공염불이나 다름없는 주택공급 공약은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장이나 대통령마저도 수도권 집값 잡기에 매달리고 있지만 전국 대부분은 소멸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김 전 장관의 눈빛은 그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정치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출마병’에 걸린 정치인들과 다른 길


그가 정치를 시작했을 때로 잠시 돌아가봅니다. 김 전 장관은 김영삼 정부에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81년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한 뒤 84년 부활한 총학생회 첫 회장에 당선돼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가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비서로 발탁돼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난해 펴낸 <고통에 대하여>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94년 민자당 총재인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영춘(오른쪽) 성동병 지구당 위원장 직무대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이 스물여섯에 나는 상도동계 사람이 되었다. 내 발로 찾아간 선택이었다. 목적도 분명했다.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이던 김영삼은 직선제 개헌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이었으므로 나는 이곳에서 힘껏 전두환과 싸우기로 결심했다.···바로 민주산악회였다. 정권의 정치 사찰에 맞서 “산에도 못 가냐”로 맞선 것이다. 민주산악회 깃발을 따라 사람들이 산에 모였다. 산에서 울분을 토하고 민주주의를 외쳤다. 조국의 산하를 걸으면서 저항을 맹세하고 희망을 염원했다. 산에서 사람들이 강해져 갔다. YS도 마찬가지였다>

정치를 시작할 때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아니라 산에서 울분을 토하며 희망을 염원했습니다. 이번에는 어떨까요. “선거만 있으면 출마하는 직업적 정치인의 길을 더이상 걷고 싶지는 않다” 하나같이 선거가 다가오면 출마부터 생각하는 ‘출마병’에 걸린 뭇 정치인들에게 울림을 주진 않을까요.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에는 <고통에 대하여>로 돌아오겠습니다. 해당 책의 첫 머리에는 <과거 기준으로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겠지만, 현재 기준에서는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지 못한다.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의 정치라면, 도대체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 정치란 무엇인가>

그는 2008년 총선불출마를 선언하고 잠시 여의도를 떠나 있던 때 ‘사람중심’의 세상을 꿈꾸며 인본경제연구소를 출범시켰습니다. 흔한 정치인들의 사람장사하는 모임이기보다 인기없는 인문학 연구모임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부산에 내려와 인본사회연구소로 사단법인화 한 뒤 평회원으로 지금도 문화탐방과 인문·경제·사회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김 전 장관은 무엇을 찾고 있을까요. 그는 인본사회연구소의 설립 취지를 헌법 제10조에서 찾은 바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는 자서전 격인 <고통에 대하여>의 집필 이유를 <41년 동안의 역사를 다시금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리고 오늘날 우리 민초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추적해 우리가 무엇을 잘했으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기억해내고 그 답을 찾고자 한다>했습니다. 결국 그 답을 찾아 다시 돌아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여쏙야쏙’은 여당과 야당 ‘속’ 사정을 ‘쏙쏙’ 알기 쉽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86세대 김영춘 “시대가 변했다, 정치 그만둔다” [전문]


정치를 그만둡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느낀 우선적인 소감입니다. 이제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고 일상의 행복입니다. 그걸 더 잘해줄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그렇지 못한 집권당에게 응징투표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2011년에 부산으로 귀향해서 일당 독점의 정치풍토 개혁과 추락하는 부산의 부활에 목표를 두고 노력해왔습니다. 부산의 변화가 전국의 변화를 견인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목표는 절반쯤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아직도 기울어진 운동장이긴 합니다만 이제는 국힘당 후보라도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방심은 곤란한 지역이 되었으니까요. 또 제가 부산 부활의 큰 전환점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했던 부울경 메가시티 건설,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도 이미 성과를 냈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해수부 장관을 맡아서는 북항재개발 1, 2단계 사업계획과 부산신항 추가확장계획을 모두 확정지었습니다. 또한 부산에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고 무너진 해운산업을 재건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큰 지원이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저는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20대의 나이부터 시작하여 오랫동안 정치계에서 일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어떤 자리를 목표로 정치를 하고 선거에 나서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나라를 위해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일에 도전해왔을 뿐입니다. 서울에서의 정치생활을 청산하고 부산으로 돌아온 것도 그런 도전의 차원이었습니다. 제게 선거의 유불리는 고려요소가 아니었습니다. 작년 보궐선거에서는 오거돈 전 시장이 저질러놓은 사고의 수습과 대선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제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의 기회로 삼고자 한 것도 출전의 중요한 동기였습니다. 그런 목표들은 이루어졌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릴 때입니다. 저는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근본적으로 저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고뇌 때문입니다. 대선 기간 내내 제가 정치 일선에서 계속 활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번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를 정치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거대 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면 나는 거기에 적합한 정치인인가를 자문자답해봤습니다. 선거만 있으면 출마하는 직업적 정치인의 길을 더이상 걷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넘겨주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정치를 해온 개인의 문제로 바라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정치인의 생활을 청산하고 국민 속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오랜 기간 과분한 평가로 일하도록 만들어주신 서울과 부산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세상에 되돌려드리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국민의 행복 증진과 나라의 좋은 발전을 위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려 합니다. 놀랍도록 빨리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공부하면서 젊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도 찾아보겠습니다.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라는 단순한 경구를 되새기면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 3. 21 김영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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