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대항해 내수품으로 '자급자족'하는 전략을 수년 전부터 추진해왔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이 전략이 실패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앞서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 세계가 여러 제재를 가하면서 이를 극복하고자 외국 수입 상품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이른바 '러시아 요새화(Fortress Russia)' 전략을 추구했다. 이 전략에 러시아는 2015~2020년 세출 예산의 1.4%에 해당하는 2조 9000억 루블(약 35조 540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략과 정반대로 수입품 의존 경향은 최근 더 심화됐다고 WSJ는 지적했다. 러시아의 가이다르 경제정책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제조업체 가운데 81%가 수입품을 대체할 러시아 제품을 찾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절반 이상이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해 불만족한다고도 답했다. 두 수치는 해당 연구소가 지난 2015년 설문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높았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소비재 시장의 수입품 의존 경향도 두드러진다. 모스크바 고등경제대학교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비(非)식품 소비재 매출에서 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달했다. 특히 통신기기의 수입품 점유율은 86%나 됐다.
러시아의 수입액은 2020년 러시아 GDP의 20%에 육박하는데 이는 중국(16%)은 물론 인도, 브라질 등 다른 국가의 GDP 대비 수입액 비중보다 높은 수치다.
러시아의 주 수출원인 에너지 사업도 위기에 처했다. 러시아는 노후화된 유전과 가스전을 활용할 때 서방의 기술에 주로 의존하는데 최근 대러시아 제재로 인해 러시아 에너지 기업과 외국 기업 간의 프로젝트들이 중단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우방국인 중국에서 각종 상품을 공급받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한계도 존재한다는 것이 WSJ의 관측이다. 중국이 이미 서방과 '무역 전쟁'을 치르고 있는 데다가 러시아 기업들이 요하는 제품들 가운데 중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제품도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 경제 전문가인 야니스 클루게 독일국제안보연구원 연구원은 "러시아 정도 경제 규모의 나라에서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제품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러시아 경제는 앞으로 더욱 원시적인 상태에 접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