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농협 선거를 앞두고 조합 예산으로 특정 조합원에게 과일 세트 등 선물을 사서 돌린 조합장에게 벌금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한 지역 농협 조합장 A씨는 2019년 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조합원 29명에게 113만1000원 상당의 배 선물세트(3만9000원짜리 29세트)를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두달 뒤 조합원 3명에게 총 12만3000원 상당의 귤과 한라봉을 선물하고, 입원해있던 전직 조합장에게 3만2000원 상당의 음료 상자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 비용은 외상으로 처리됐다가 조합의 광고선전비나 생산지도비 항목으로 결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위탁선거법은 농협 조합장과 중앙회장의 재임 중 기부행위를 금지하고, ‘직무상의 행위’나 ‘의례적 행위’ 등을 기부행위의 예외로 삼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A씨는 법정에서 ‘조합원들에게 선물을 돌릴 때 조합의 예산을 썼으며 회계 처리에 문제가 없었으니 직무상의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불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피고인이 법령에서 금지한 기부행위를 한 대상자의 수가 33명으로 적지 않고, 기부 금품의 합계액도 약 129만원으로 적지 않다”며 모든 혐의의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통상 조합 명의로 제공하는 선물은 조합 스티커를 붙이지만 A씨가 준 선물 세트는 이런 표시가 없었고, 심부름한 직원도 조합원들에게 ‘조합이 아닌 조합장의 선물’이라고 말했다는 점 등이 참작됐기 때문이다.
조합 차원에서 수령자를 선정해 결재 과정 등을 거치고 선물을 하는 일은 있었으나 이번 사건은 A씨가 특정 조합원 명단을 추려 단독으로 선물을 결정했다는 점 역시 문제가 됐다.
대법원은 “이 사건 기부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벌금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위탁선거법상 허용되는 ‘직무상의 행위’가 되려면 금품이 위탁단체의 명의로 지급돼야 하고, 그 단체의 사업계획이나 수지 예산에 따라 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위탁단체의 명의로 제공되는지 여부는 금품 제공 대상자 선정과 집행 과정이 공식적 절차를 거쳤는지, 사업 수행과 관련이 있는지, 수령자가 금품 제공의 주체를 위탁단체로 인식했는지, 제공 물품의 종류나 가액 등이 기존 관행에 맞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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