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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머뭇거리면 총체적 위기 온다"

■ 일자리연대 '새 정부에 바란다' 토론

시대 달라졌는데 법제도는 그대로

일자리 부족 등 '악순환 늪' 빠져

일방적 재정 투입은 해결책 안돼

정부 개입 인정해야 노동시장 변화





한국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과 노동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노동시장에 자유로운 질서를 만드는 노동 개혁에 윤석열 정부가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유럽의 주요 노동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노동시장 양극화가 고착화됐고 노사 갈등과 분열도 극심한 만큼 정부가 일정 수준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30일 일자리연대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새 정부에 바란다, 노동개혁과 일자리 정책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하는 사람은 다양화됐는데 규율하는 법제도는 산업화 논리를 따르고 있다”며 “노동 개혁이 없다면 일자리 부족, 사회적 보호 요구 상승에 따른 무리한 재정 투입 등 총체적 위기가 연출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연대는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을 비롯해 학계·법조계·정부 등 전문가 50여 명이 모여 만든 시민 단체다.

노동 개혁은 노동시장과 노사 관계의 문제를 이전과 다르게 푸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의 거센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고 이는 정권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시장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 개혁의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이라며 “독일 사민당 정권은 하르츠 개혁을 통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 독일 경제의 부흥을 견인했지만 사민당은 정권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과거 노동 개혁을 추진하면서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김영삼 정부는 노사 관계 개혁을 추진하다가 지지도 하락을 마주했고, 박근혜 정부도 2015년 추진했던 노동 개혁으로 노사정 대타협이 파기되는 결과를 맞았다. 충분한 준비 없이 노동 개혁을 추진했다가 자칫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노동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노동 유연성의 5대 요소(고용·임금·숙련·근로시간·공간) 중 가장 쟁점인 고용 유연성만 공약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고용 유연성과 관련해 쉬운 해고 프레임, 비정규직의 덫, 저임금의 함정과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유럽은 한 기업에서 보장되지 않는 고용 안정성을 전체 노동시장의 고용 안정성 보장을 통해 극복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국은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가 뚜렷하고 단단한 연공서열, 기업별 노조 세분화, 미진한 사회적 대화 탓에 국가의 일정 역할 없이는 노동 개혁을 이루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연구위원도 윤 당선인의 공약에서 고용 유연성이 빠진 것처럼 개별 기업의 고용 유연성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노사와 여야 간 갈등이 불가피한 해고 유연화와 같은 이슈는 피해야 한다”며 “임금, 근로시간, 직무 간 이동 등 노동시장 전반의 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효성 있는 노동 개혁을 달성하려면 자유로운 노동 질서 구축도 중요하지만 한국 노동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해 정부의 역할과 개입을 일정 수준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주장도 나왔다. 이 연구위원은 “노동 규율에서 노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노동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영미형 자유시장경제의 모델과 한국 상황을 고려한 일종의 절충안이다.

한편 이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생애 주기별 일자리와 복지정책을 연계한 정책으로 일자리를 확대함으로써 노동 개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청년·여성·중장년과 같은 계층과 취업 단계를 고려한 맞춤형 지원 정책을 통해 노동 유연성을 높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중 사회안전망 강화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적극 추진했다는 점에서 차기 정부에서 노동정책의 연착륙을 이끄는 완충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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