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보유외환이 서방의 제재로 무용지물이 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디지털화폐의 유용성이 부각되고 있다. 전쟁으로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어려워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암호화폐가 대안적 결제 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 시간) 러시아 제재에서 드러난 화폐의 ‘무기화’ 등으로 기존 통화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디지털화폐가 대안으로 주목되고 있다고 전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주주 서한에서 이번 전쟁으로 각국이 통화 의존성을 재평가하게 될 것이며 디지털화폐 도입이 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서방의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해외의 달러화 자산이 동결된 러시아에서는 전쟁 초 루블화로 암호화폐를 구매하는 움직임이 줄을 이었다. 금융거래 차질, 루블화 폭락의 와중에 러시아인들이 암호화폐로 자산을 보전하려 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서 암호화폐로 기부금을 모금해 이목을 끌었다. AP통신에 따르면 개전 이후 이달 26일까지 암호화폐로 모인 기부금은 6700만 달러(약 810억 원)에 이른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빠르게 송금받고 사용할 수 있는 특성 덕에 암호화폐 기부가 전쟁에서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에 기축통화국 미국도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검토에 본격 돌입해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달 9일 서명한 디지털 자산 발전 행정명령에 따라 미 재무부·상무부 등은 암호화폐가 경제·안보·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물론 미국의 CBDC 도입 가능성과 방안 등에 대한 검토를 이어갈 예정이다. 중국은 이미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11개 도시에 디지털위안화를 대규모로 보급하며 CBDC 패권 장악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앞서 후버연구소는 디지털위안화가 중국과 거래하는 무역 파트너들 간에 지배적인 결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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