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층 고조된 신냉전의 불똥이 신흥국 경제에 떨어지고 있다. 물가 급등에 미국의 공격적 긴축 가능성까지 겹쳐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외화 자금 유출이 가시화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시장조사 업체 리피니티브리퍼를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부터 한 달 동안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서 81억 달러(약 9조 8000억 원), 채권형 펀드에서 57억 3000만 달러(약 6조 9000억 원)가 유출됐다”고 전했다. 합하면 138억 3000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자본시장에서 빠져나간 셈이다. 로이터는 “지난해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 2320억 달러, 채권형에 1034억 달러가 유입된 것에서 반전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자본 이탈에 시달리는 신흥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가 폭등,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 우선 에너지와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신흥국은 수입 비용 상승에 따른 물가 급등,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난달 22일 기준 물가상승률(전년 대비)을 보면 터키 54.44%, 아르헨티나 52.3%, 체코가 11.1%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올리는 이른바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불확실성이 큰 신흥국에서 높은 금리로 안정적 수익을 가져다주는 미국 등 선진국으로의 ‘머니무브’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속속 금리를 올려 외자 유출을 막고 나섰지만 추세를 돌려놓지는 못하고 있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지난해 12월 이후 이달 2일까지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상했고 같은 기간 콜롬비아와 브라질 등 5개국 중앙은행도 두 차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 차례 금리를 올렸다. 헝가리 중앙은행은 지난해 12월 이후 최근까지 총 네 차례 금리를 올렸다. 22일(현지 시간)에는 2008년 이후 최대 폭인 1%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바 있다.
급격한 자본 이탈로 실제 위기에 처한 신흥국도 속출하고 있다. 이집트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에 포괄적 경제 프로그램 실행을 위한 지원을 공식 요청했으며 스리랑카 역시 IMF에 구제금융 요청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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