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발사)!”
지난달 30일 오전 서해 안흥항 인근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종합시험장에서 돌연 화염과 함께 거대한 물체가 날아올랐다.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된 고체추진우주로켓(우주발사체)이 발사대를 박차고 첫 시험비행에 나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적힌 흰색 동체의 맨 상단에는 시험용 가짜(더미) 위성이 탑재돼 있었다. 로켓은 점화가 시작된 직후 치솟아 13초 후 우주 공간에서 페어링(로켓 상단의 위성 보호용 덮개) 분리를 시작했다. 점화 후 22초가 지나자 동체의 B단이 분리됐고 곧이어 C단도 성공적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점화 후 47초째부터 더미 위성이 분리돼 저궤도에 올랐다. 이 모든 과정은 점화 후 불과 57초 만에 마무리됐다.
지난달 30일 국산 고체추진우주로켓이 이와 같이 첫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국방부와 ADD는 향후 추가적인 성능 검증 시험 등을 거쳐 실제 위성 등을 탑재한 뒤 발사할 예정이다. 이번 시험은 대내적으로 국방 우주 역량을 확충하고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로 기술을 이전하기 위한 차원이다.
사실 엔진 연소를 위해 고체연료를 쓰는 고체추진 방식은 전 세계 우주로켓의 주류는 아니다. 우주 선진국들은 대부분 액체연료를 활용한 액체추진로켓을 주력 기술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국산 우주로켓 ‘누리호’를 액체추진 방식으로 개발한 상태다. 국방 분야가 아닌 우주과학 분야에서는 고체추진로켓이 사실상 한물간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과 ADD가 해당 기술의 르네상스에 승부수를 던진 데는 나름대로의 청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고체추진로켓인 일본 ‘엡실론’을 능가하는 기술을 2025년까지 확보하겠다는 꿈이다. 이를 통해 다량의 초소형 위성 등을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히 쏴올리겠다는 게 우리 군의 목표다.
◇치열했던 정부 내 갑론을박=사실 이번 사업의 이면에는 청와대와 유관 부처, 국책 연구기관 간 치열한 갑론을박의 과정이 있었다. 발단은 우리나라 로켓 개발에 규제로 작용했던 ‘한미 미사일지침’의 완화·폐지였다. 해당 지침은 1970년대 미국이 일부 미사일 기술을 한국으로 이전해주는 대신 당시 우리 측 박정희 정부가 일정한 개발 제한을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한 비공식 합의다. 우리 정부는 해당 규제를 점진적으로 풀기 위한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 대외비 회의를 지난 20여 년간 열어왔다. 회의에는 청와대 안보실, 외교부, 국방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ADD 등이 참여해왔다.
그러던 해당 회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뜨거운 감자’에 직면했다. 우리 정부가 고체연료로켓 개발 등을 위해 해당 지침의 추가 완화 및 폐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미 설득 논리를 놓고 회의에 참석한 기관 간 일부 의견이 엇갈린 것이었다. 국방부와 ADD는 앞으로 초소형 인공위성 등의 발사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고체추진우주로켓을 개발해 보다 신속하게 초소형 위성들을 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미 미국·중국·소련 등 우주 강국들은 액체추진로켓으로 인공위성 발사와 우주탐사를 하고 있고 고체추진로켓은 경제적으로 효용성이 제한돼 쓰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주장도 회의 석상에서 만만찮게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우주로켓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의 아틀라스 시리즈, 러시아 소유즈 시리즈, 중국 창정 등은 모두 액체추진 방식이다. 고체추진 방식으로는 일본 엡실론, 미국 토러스, 프랑스 베가 등이 있지만 해당 국을 대표하는 주력 우주로켓은 아니다.
이런 갑론을박 속에서 고체추진로켓에 힘을 실어준 것은 청와대였다. 특히 당시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당시 회의에서 “예를 들어 짜장면을 배달하는 데 비싼 벤츠 승용차(액체추진로켓)보다는 오토바이(고체추진로켓)가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거들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고체추진로켓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회의 참가자들의 중지가 모아졌다. 그 결과 2020년 7월 한미 미사일 지침의 4차 수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풀린 지 불과 21개월 만에 첫 시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식 제조 혁신 넘어서야=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는 남았다. 무엇보다 경제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직은 고체추진로켓의 발사 비용이 액체추진로켓보다 높다. 고체연료 제조 비용이 액체연료보다 높고 제반 인프라가 액체연료로켓 중심으로 구비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GAO 자료를 바탕으로 보면 인공위성과 같은 탑재체를 로켓에 실어 우주 궤도로 올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국제 시세 기준)은 명확하다. 탑재체 중량 1㎏당 액체 추진 방식인 소유즈 로켓이 1만 6,495달러인 반면 고체추진 방식인 엡실론은 3만 2,500달러 정도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엡실론 로켓의 제조 공정을 혁신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제성을 개선해가고 있다. 그 결과 과거 한화 기준 약 350억 원 수준이던 발사 비용이 현재는 250억 원대로 낮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일본은 엡실론 로켓의 비용을 낮추기 위해 설계와 공정을 혁신했다”며 “우선 들어가는 부품 수를 간소화하는 설계 방식, 3D프린터 등을 활용한 부품 생산, 원가를 절감하는 조립 공정 방식 등을 도입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엡실론 로켓을 넘어서려면 일본식 혁신을 넘어서는 끊임없는 원가 절감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개발을 추진 중인 고체추진로켓은 현재 ‘4단 로켓’ 구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제조 비용과 운용상의 신뢰성 등을 감안하면 이를 ‘4단→3단→2단’으로 점진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엡실론 로켓도 원형인 1970년대 V-5로켓 시절에는 4단이었다가 현재 3단 구조로까지 간소화됐으며 향후 단수가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로켓 단수를 더 줄이려면 각 단에 사용할 로켓 자체의 추력이 고도화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군도 이를 자신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고위력 탄도미사일까지 개발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의 고체추진 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추가적인 검증 단계를 거쳐 이르면 1~2년 내에 한국형 고체추진우주로켓 기술을 완성하고 2025년까지는 실제 위성을 탑재한 정식 발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ADD가 해당 기술을 완성하면 민간 기업으로의 이전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이 고체추진로켓 기술을 이어받을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술이전 과정에서 잡음이 없도록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이전받는 기업 역시 혈세로 확보한 기술을 보다 고도화하기 위한 사업 비전과 투자 계획을 면밀히 준비해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와 연구계가 로켓 기술 개발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고체추진로켓→액체추진로켓’으로 기술을 진화시켜왔다. 따라서 이번에 고체추진로켓에 대한 정부와 군의 투자가 확대되더라도 그간 공들인 액체추진로켓에 대한 지원이 축소되지 않도록 확장적 연구개발비 편성이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액체추진로켓을 개발해온 항우연과 고체추진로켓을 연구해온 ADD가 건전한 경쟁과 협업 관계를 유지하도록 관계 부처들이 잘 조율해줘야할 것으로 보인다.